"바둑 두면 치매에 안 걸린다"는 말, 기원에서도 집안 어른들 사이에서도 흔히 오가는 이야기입니다. 그 말에 힘입어 바둑을 다시 잡으신 분도 계시고, 손주에게 바둑을 가르치려는 분도 계시지요. 그런데 이 말은 어디까지가 근거 있는 이야기이고 어디부터가 희망 섞인 과장일까요. 결론을 먼저 말씀드리면 이렇습니다. 바둑을 포함한 두뇌 활동이 나이 들어서의 인지 건강에 도움이 될 가능성은 여러 연구에서 꾸준히 제기되어 왔지만, "바둑을 두면 치매를 막는다"고 단정할 수 있는 단계는 아닙니다. 오늘은 부풀리지도 깎아내리지도 않고, 지금까지 알려진 만큼만 차분히 정리해봤습니다.

■ 연구들은 무엇을 말하고 있나

나이 들어서도 머리를 쓰는 활동을 꾸준히 하는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인지 기능 저하를 늦게 겪는 경향이 있다는 관찰 결과는 국내외 연구에서 여러 차례 보고되어 왔습니다. 독서, 악기, 외국어, 카드놀이와 함께 바둑·장기 같은 반상 게임이 그런 활동의 단골 목록에 오릅니다. 바둑을 오래 둔 사람들의 뇌를 살펴본 국내 연구들에서 특정 부위의 발달이나 연결의 차이가 관찰되었다는 보고도 있고, 바둑 교육이 어린이와 어르신의 주의력·문제 해결력에 좋은 영향을 주었다는 연구도 소개된 바 있습니다. 다만 여기에는 중요한 단서가 붙습니다. 이런 연구의 상당수는 '관련이 있다'를 보여줄 뿐 '바둑 덕분이다'라는 인과관계까지 증명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원래 머리 쓰기를 즐기는 사람이 바둑도 두는 것일 수 있으니까요. 학계에서도 두뇌 활동과 치매 위험의 관계는 계속 연구 중인 주제로 남아 있습니다.

■ 그래도 바둑이 주목받는 이유 — 쓰는 인지 기능이 많습니다

단정은 못 해도, 바둑이 두뇌 활동으로서 좋은 조건을 여럿 갖춘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한 판의 바둑에는 여러 인지 기능이 동시에 동원됩니다. 수를 몇 수 앞까지 머릿속으로 그려보는 작업 기억과 추론, 부분 전투와 전체 형세를 오가는 공간 지각과 판단, 끝내기에서의 계산, 상대 의도를 읽는 눈치와 전략, 그리고 한 판 내내 이어지는 집중력. 정석과 사활을 익히는 과정은 기억력 훈련이기도 합니다. 무엇보다 바둑은 판마다 다른 문제가 새로 주어지는 게임이라, 같은 동작을 반복하는 소일거리보다 머리에 주는 자극이 다양하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두뇌 활동은 쉽고 익숙한 것보다 약간 어렵고 새로운 것이 좋다고 알려져 있는데, 바둑은 아무리 두어도 정복이 안 되는 게임이니 그 조건 하나는 확실히 충족하는 셈입니다.

■ '머리의 적금'이라는 개념 — 인지 예비능 이야기

연구자들이 이 주제를 설명할 때 자주 꺼내는 개념이 '인지 예비능'입니다. 쉽게 말해 평생에 걸쳐 머리를 쓰며 쌓아둔 여유분, 곧 머리의 적금 같은 것입니다. 교육, 직업 활동, 취미 등으로 두뇌를 많이 써온 사람은 뇌에 노화로 인한 변화가 어느 정도 생겨도 겉으로 드러나는 기능 저하가 더디게 나타나는 경향이 있다는 관찰에서 나온 개념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병 자체를 막는다기보다 버티는 밑천을 두둑하게 해 둔다는 쪽에 가까운 이야기이지요. 바둑처럼 꾸준히, 여러 기능을 함께 쓰는 취미가 이 적금 붓기에 어울리는 후보로 거론되는 것입니다. 물론 이 역시 연구가 진행 중인 개념이라 확정된 진리처럼 받아들일 일은 아니지만, "지금부터라도 머리 쓰는 습관을 들이는 것이 남는 장사"라는 방향만큼은 전문가들 사이에 큰 이견이 없어 보입니다.

■ 기원과 복지관, 바둑의 절반은 사람입니다

바둑의 효용을 이야기할 때 자주 빠지는 대목이 있습니다. 바로 사람입니다. 외로움과 고립이 나이 들어서의 인지 건강에 좋지 않은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은 여러 연구에서 지적되어 온 바이고, 반대로 꾸준한 사회적 교류는 보호 요인으로 꼽힙니다. 그런 점에서 기원과 복지관 바둑교실은 단순한 대국 장소가 아닙니다. 정해진 요일에 갈 곳이 있고, 가면 이름을 불러주는 상대가 있고, 한 판 두고 나면 복기라는 핑계로 대화가 이어지는 곳. 바둑 그 자체의 효과와 별개로, 이 규칙적인 외출과 어울림이 주는 유익이 만만치 않다는 것이지요. 혼자 태블릿으로 두는 바둑도 좋지만, 일주일에 한 번은 얼굴 보고 두는 바둑을 섞으시라고 권해드리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근처 복지관과 문화센터의 바둑교실은 수강료도 저렴한 편이고, 또래 초심자들과 함께 시작할 수 있어 재입문 자리로도 좋습니다.

■ 여기서부터는 과장입니다 — 경계할 말들

바둑 사랑이 지나쳐 나오는 과장들도 짚어두겠습니다. "바둑 두는 사람은 치매에 안 걸린다"는 말은 사실이 아닙니다. 평생 바둑을 두고도 치매를 겪는 분들이 계시고, 어떤 단일 활동도 치매를 완전히 막아주지는 못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바둑이 치매 치료에 효과가 있다"는 말도 조심해야 합니다. 이미 진행된 인지 저하를 바둑으로 치료할 수 있다는 근거는 확립되어 있지 않고, 치매의 진단과 치료는 어디까지나 병원의 영역입니다. 기억력이 예전 같지 않다고 느끼신다면 바둑판을 새로 사기 전에 보건소나 병원의 검진을 먼저 받아보시는 것이 순서입니다. 바둑은 건강한 두뇌 습관의 훌륭한 후보이지, 검진과 치료를 대신하는 수단이 아닙니다. 이 구분만 분명히 하면 바둑의 가치는 조금도 줄지 않습니다.

■ 하루 한 판 습관, 이렇게 만들어보세요

두뇌 활동은 한 번의 몰아치기보다 꾸준함이 중요하다는 것이 공통된 조언입니다. 바둑으로 그 꾸준함을 만드는 요령을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첫째, 하루 한 판. 온라인 속기 한 판이면 부담이 없습니다. 둘째, 두고 끝내지 말고 5분 복기. 이겼든 졌든 갈림길 두어 곳을 되짚는 습관이 판을 배움으로 바꿔줍니다. 셋째, 아침에 사활 문제 두세 개. 신문 바둑란이나 문제집, 앱의 묘수풀이 코너면 충분하고, 정답을 보기 전에 끝까지 머리로 읽는 것이 핵심입니다. 넷째, 일주일에 한 번은 사람과 대면 대국. 다섯째, 가끔은 프로 대국 감상으로 눈을 높이는 것도 좋은 자극이 됩니다. 사활 공부법과 프로 대국 감상 요령은 예전 글들에서 자세히 다루었으니 이어 보시면 됩니다. 부담이 크면 바둑이 숙제가 되어 오래가지 못하니, 즐거움이 유지되는 선에서 판 수를 정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 바둑만으로는 부족합니다 — 함께 챙길 것들

두뇌 건강은 머리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 요즘 건강 상식의 큰 흐름입니다. 규칙적인 운동, 충분한 수면, 균형 잡힌 식사, 혈압·혈당·청력 관리, 금연과 절주 같은 생활 습관이 인지 건강과 두루 관련이 있는 것으로 이야기됩니다. 그러니 바둑 한 판을 두뇌 담당으로 두시되, 몸 담당으로 걷기 반 시간을 짝지어 주시면 좋습니다. 기원까지 걸어가서 두 판 두고 걸어 돌아오는 하루라면, 머리와 다리와 사람까지 세 가지를 한 번에 챙기는 셈입니다. 대국 중에도 한 시간에 한 번은 일어나 허리를 펴고 물 한 잔 마시는 습관을 곁들이면 더 좋습니다. 바둑을 아직 모르는 배우자나 친구에게 이번 기회에 가르쳐보는 것도 방법입니다. 가르치는 일 자체가 상당한 두뇌 활동이고, 집 안에 상시 대국 상대가 생기는 것은 덤입니다.

■ 자주 묻는 질문

"몇 살에 시작해도 효과가 있을까요?" 두뇌 활동은 시작하기에 늦은 나이가 따로 없다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입니다. 칠십 대에 바둑을 처음 배워 즐기시는 분들이 실제로 적지 않습니다. 실력보다 꾸준함이 관건이고, 초심자에게는 낯선 것을 새로 배우는 과정 자체가 훌륭한 두뇌 자극이 됩니다.

"바둑과 장기, 어느 쪽이 더 좋은가요?" 우열을 가린 근거는 마땅치 않습니다. 즐겁게 오래 할 수 있는 쪽이 그 사람에게 좋은 게임이라는 것이 실용적인 답입니다. 둘 다 두시면 더 좋고요.

"온라인 바둑도 같은 효과가 있나요?" 판을 읽고 수를 내는 두뇌 활동이라는 점은 같습니다. 다만 사람과 어울리는 몫은 화면이 다 채워주지 못하니, 대면 대국과 섞는 것을 권해드립니다.

"이기고 지는 스트레스가 오히려 해롭지 않을까요?" 적당한 긴장은 몰입의 재료이지만, 승패에 잠을 설칠 정도라면 즐기는 선을 넘은 것입니다. 접바둑으로 수준을 맞추고, 진 판은 복기로 배움을 챙긴 뒤 훌훌 터는 것이 오래 두는 분들의 요령입니다. 취미의 첫째 조건은 어디까지나 즐거움입니다.

"묘수풀이 문제집만 푸는 것도 도움이 될까요?" 사활과 묘수풀이는 집중해서 수를 읽는 훈련이라 그 자체로 좋은 두뇌 활동으로 꼽힙니다. 다만 실전 대국이 주는 종합적인 판단과 사람 사이의 재미까지는 담지 못하니, 문제 풀이는 반찬으로, 대국은 밥으로 삼으시면 균형이 맞습니다.

■ 정리하면

바둑이 두뇌 건강에 좋을 가능성을 보여주는 연구들은 꾸준히 쌓이고 있지만, 치매를 막는다고 단정할 근거는 아직 없습니다. 확실한 것은 이렇습니다. 바둑은 여러 인지 기능을 한꺼번에, 즐겁게, 평생 쓰게 해주는 드문 취미이고, 기원과 바둑교실은 규칙적인 외출과 어울림까지 얹어줍니다. 여기에 걷기와 수면, 검진 같은 기본 건강 관리를 짝지으면, 바둑은 과장 없이도 노년의 든든한 한 축이 됩니다. "바둑 두면 치매 안 걸린다"보다 정확한 문장은 아마 이것일 겁니다. "바둑은 머리와 사람을 함께 쓰게 하는, 나이 들수록 값이 오르는 취미다."

바둑이 치매를 막아준다고 장담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하루 한 판의 몰입과 매주 만나는 바둑 친구가 나이 든 일상에 주는 활력만큼은 장담해도 될 것 같습니다. 회원님들은 바둑을 두고 나면 머리가 맑아지는 쪽인가요, 지끈거리는 쪽인가요. 바둑이 생활에 가져다준 변화, 몇 년을 두면서 느끼신 몸과 마음의 차이를 댓글로 들려주세요. 바둑판 앞에서 보낸 세월의 증언만큼 설득력 있는 자료도 없을 테니까요.

(일반적인 건강 정보이며, 진단·치료는 의사의 진료를 따라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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