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에 모종 가게를 아무리 둘러봐도 없는 모종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당근입니다. 고추도 상추도 배추도 다 모종으로 파는데 당근 모종은 어느 종묘상에도 없습니다. 당근은 옮겨 심는 순간 뿌리가 망가지는 작물이라 오직 밭에 씨앗을 바로 뿌리는 직파만 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직파의 최적기가 바로 지금, 8월 중하순입니다. 이 시기를 넘기면 뿌리가 굵어지기 전에 추위가 와서 결국 내년 이맘때를 기다려야 합니다. 지난주 김장 무 파종 글에서 무는 9월 초까지 여유가 있다고 말씀드렸는데, 당근은 무보다 자라는 데 두세 주가 더 걸려 마감이 그만큼 빠릅니다. 씨 뿌리기부터 발아 관리, 솎기 두 번, 11월 수확까지 순서대로 정리해봤습니다.
■ 당근 모종이 세상에 없는 이유
당근은 곧은 뿌리 하나가 그대로 굵어져 우리가 먹는 부분이 되는 직근 작물입니다. 어릴 때 뿌리 끝이 조금이라도 다치거나 꺾이면 그 자리에서 뿌리가 두세 갈래로 갈라져, 다리 벌린 가랑이 당근이 되고 만다고 합니다. 그래서 모종을 키워 옮겨 심는 방법이 통하지 않고, 밭이든 화분이든 자랄 자리에 씨앗을 바로 뿌려야 합니다. 같은 이유로 흙 속에 돌멩이나 덜 삭은 퇴비 덩어리가 있어도 뿌리가 갈라지거나 휘니, 파종 전에 흙을 한 삽 깊이로 갈면서 돌을 골라내는 것이 첫 번째 준비입니다. 밑거름은 파종 두어 주 전에 잘 삭은 퇴비를 넣는 것이 정석이고, 시간이 없다면 퇴비 없이 뿌리고 나중에 웃거름으로 보충하는 편이 오히려 낫다는 평이 많습니다.
■ 파종 적기 — 중부는 8월 안에, 남부는 9월 초까지
가을 당근은 파종에서 수확까지 100일 안팎이 걸립니다. 11월 중하순 서리가 굵어지기 전에 거두려면 거꾸로 계산해 중부 지방은 8월 중순부터 말까지, 남부 지방은 9월 첫 주까지가 파종 한계선입니다. 봄에도 뿌릴 수는 있지만 여름 더위와 장마에 뿌리가 갈라지고 벌레가 꼬여, 당근 농사는 가을이 본게임이라는 것이 텃밭 하시는 분들의 중론입니다. 게다가 가을 당근은 자라는 동안 기온이 서서히 내려가며 단맛이 차올라 맛도 봄 당근보다 낫습니다. 이번 주말과 다음 주말, 이 두 번의 주말이 사실상 올해의 기회인 셈입니다.
■ 발아가 팔 할 — 호광성 씨앗과 신문지 덮기

당근 농사의 성패는 싹 틔우기에서 팔 할이 갈립니다. 당근 씨앗은 빛을 받아야 싹이 트는 호광성 종자라, 흙을 두껍게 덮으면 그대로 실패합니다. 줄 간격 20cm쯤으로 얕은 골을 내 씨앗을 12cm 간격으로 줄뿌림하고, 흙은 씨앗이 겨우 가려질 만큼 5mm 정도로만 살짝 덮은 뒤 손바닥으로 가볍게 눌러줍니다. 문제는 8월 말 땡볕입니다. 얕게 덮인 씨앗은 한나절이면 바짝 마르는데, 당근 씨앗은 한 번 마르면 발아를 포기해 버립니다. 여기서 요긴한 것이 신문지 덮기입니다. 물을 흠뻑 준 뒤 신문지를 한 겹 덮고 그 위로 다시 물을 적셔 두면 빛은 어느 정도 통과하면서 수분은 잡아줍니다. 싹이 트기까지 710일 동안 아침저녁으로 신문지 위에 물을 주고, 싹이 보이기 시작하면 그날로 신문지를 걷어야 웃자라지 않습니다. 신문지 대신 짚이나 한랭사를 얇게 덮는 방법도 같은 원리입니다.
■ 솎기 두 번 — 당근 굵기는 간격이 정합니다
싹이 트고 나면 이제 뽑는 일이 남습니다. 당근은 두 번에 나눠 솎는 것이 공식입니다. 1차는 본잎이 23장 나왔을 때 포기 사이 3cm쯤으로, 2차는 본잎이 56장 되었을 때 8~10cm 간격으로 넓혀줍니다. 이 간격이 곧 당근 굵기라, 솎기를 아까워해 빽빽이 두면 전부 연필만 한 잔챙이가 되고 맙니다. 뽑을 때는 남길 포기의 뿌리가 흔들리지 않게 흙을 한 손으로 누르고 뽑는 것이 요령입니다. 2차 솎음 때 나오는 새끼손가락만 한 당근은 잎째 씻어 튀김이나 장아찌로 쓰면 되고, 어린 당근잎은 향이 좋아 데쳐 무치거나 전에 넣는 분들이 많습니다. 솎기가 곧 첫 수확인 셈입니다.
■ 가을 관리 — 어깨가 푸르러지지 않게
솎기가 끝나면 관리는 단출합니다. 물은 흙이 마르지 않을 정도로, 특히 뿌리가 굵어지기 시작하는 9월 말~10월에 가뭄이 들면 뿌리가 갈라질 수 있으니 이때만 신경 씁니다. 웃거름은 2차 솎음 직후 한 번이면 충분합니다. 한 가지 잊기 쉬운 일이 북주기입니다. 당근이 굵어지면서 뿌리 윗부분, 이른바 어깨가 흙 밖으로 드러나는데, 이 부분이 햇빛을 받으면 푸르게 변해 보기도 맛도 떨어집니다. 드러난 어깨가 보일 때마다 주변 흙을 긁어 덮어주면 끝까지 주황색 고운 당근이 됩니다.
■ 수확 — 서리 맞은 11월 당근이 가장 답니다

파종 후 100일 전후, 11월 중하순이 수확기입니다. 어깨 지름이 3~4cm쯤 되면 캘 때가 된 것인데, 잎을 한 손에 모아 쥐고 곧게 당기되 흙이 단단하면 옆을 호미로 헐어가며 뽑아야 부러지지 않습니다. 당근은 가벼운 서리를 맞으면 얼지 않으려고 전분을 당분으로 바꿔 단맛이 눈에 띄게 오른다고 합니다. 그래서 첫서리 뒤에 캔 당근이 가장 달다는 말이 나오는데, 다만 땅이 어는 강추위 전에는 다 거둬야 합니다. 보관은 잎을 바짝 잘라내는 것이 먼저입니다. 잎을 달아두면 잎이 뿌리의 수분을 계속 빨아 금세 물러집니다. 흙은 씻지 말고 털어만 낸 채 신문지에 싸서 김치냉장고나 베란다 서늘한 곳에 두면 한두 달은 거뜬합니다.
■ 화분 재배 — 깊이 30cm가 기준
밭이 없어도 당근은 됩니다. 조건은 딱 하나, 깊이입니다. 일반 당근은 뿌리가 15~20cm까지 내려가니 화분이나 스티로폼 박스의 흙 깊이가 30cm는 되어야 제 모양이 나옵니다. 얕은 화분밖에 없다면 뿌리가 10cm 안팎으로 짧은 미니 당근이나 둥근 당근 품종을 고르면 됩니다. 배양토를 채울 때 덩어리 없이 부드럽게 채우는 것이 밭의 돌 고르기에 해당하는 과정입니다. 파종과 신문지 덮기, 솎기는 밭과 똑같고, 화분은 흙이 빨리 마르니 발아기 물 주기만 더 부지런하면 베란다에서도 11월에 당근을 뽑는 재미를 볼 수 있습니다.
■ 씨앗 고르기 — 코팅 종자와 띠종자, 품종 이야기
당근 씨앗을 사러 가면 생각보다 선택지가 많습니다. 일반 씨앗은 납작하고 가벼워 바람에 날리기 쉽고 잔털까지 있어 한 알씩 집기가 어려운데, 이 불편을 덜어주는 것이 점토로 씨앗을 동그랗게 감싼 코팅(펠릿) 종자입니다. 알이 굵어 12cm 간격 줄뿌림이 한결 수월하고 나중에 솎을 양도 줄어드니, 처음 하시는 분께는 값이 조금 더 나가도 코팅 종자를 권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다만 코팅 종자는 겉의 점토가 물을 충분히 먹어야 발아가 시작되므로, 일반 씨앗보다도 발아기 보습에 더 신경 써야 한다는 점은 기억해두시기 바랍니다. 씨앗이 일정 간격으로 종이 띠에 붙어 나오는 띠종자(시드테이프)도 있는데, 골에 띠를 깔고 흙만 덮으면 파종이 끝나니 허리 굽혀 씨앗을 놓는 일이 부담스러운 분들께 요긴합니다. 품종은 국내 텃밭에서 많이 심는 오촌(五寸) 계열, 즉 뿌리 길이 1518cm 안팎의 주황 당근이 무난하고, 봉투에 가을 재배용 표기와 지역별 파종 시기가 적혀 있으니 확인하고 고르면 됩니다. 앞서 말씀드린 대로 당근 씨앗은 수명이 1~2년으로 짧은 편이라, 포장지의 채종 연도가 최근 것인지 살피는 것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 자주 묻는 질문
Q1. 씨앗을 뿌린 지 열흘이 지났는데 싹이 안 나옵니다. A. 십중팔구 발아기 건조가 원인입니다. 당근 씨앗은 수명도 짧아 묵은 씨앗이면 발아율이 뚝 떨어집니다. 8월 안이라면 새 씨앗으로 신문지 덮기를 해서 다시 뿌리는 것이 기다리는 것보다 빠릅니다.
Q2. 캐 보니 당근이 두세 갈래로 갈라져 있습니다. A. 흙 속 돌멩이나 덜 삭은 퇴비 덩어리에 뿌리 끝이 닿았거나, 어릴 때 뿌리가 다친 경우입니다. 맛에는 지장이 없으니 드시면 되고, 내년에는 흙 고르기와 완숙 퇴비에 신경 쓰면 됩니다.
Q3. 당근에도 벌레가 꼬이나요? A. 배추 무만큼 심하지는 않지만 잎에 호랑나비 애벌레가 곧잘 붙습니다. 몇 마리면 손으로 잡으면 되고, 파종 후 한랭사를 씌우면 발아기 보습과 방충을 겸할 수 있습니다.
Q4. 무 심을 자리 옆에 당근을 같이 심어도 되나요? A. 됩니다. 둘 다 지금이 파종기라 이랑을 나눠 쓰기 좋습니다. 다만 당근이 무보다 발아가 까다로우니 물 주기는 당근 쪽 기준으로 맞추는 것이 안전합니다.
Q5. 솎은 당근을 빈자리에 옮겨 심으면 안 되나요? A. 권하지 않습니다. 서두에 말씀드린 대로 당근은 뿌리 끝이 조금만 다쳐도 갈라지는 작물이라, 옮겨 심은 포기는 살아남아도 대부분 가랑이 당근이 됩니다. 빈자리가 아까우면 그 자리에 씨앗을 몇 알 다시 뿌리는 쪽이 결과가 낫습니다.
Q6. 파종 전에 씨앗을 물에 불려도 되나요? A. 하루쯤 물에 담갔다 뿌리면 발아가 이틀 정도 빨라진다는 분들이 있습니다. 다만 코팅 종자는 물에 불리면 점토가 녹아버리니 그대로 뿌려야 하고, 불린 씨앗은 마르기 전에 바로 뿌려야 한다는 조건이 붙습니다.
■ 정리하면
- 당근은 모종이 없는 직파 전용 작물, 옮겨 심으면 뿌리가 갈라집니다.
- 파종 한계선은 중부 8월 말, 남부 9월 첫 주. 지금 뿌려야 11월에 캡니다.
- 호광성 씨앗이라 흙은 5mm만 덮고, 싹 틀 때까지 신문지 덮기로 보습.
- 솎기 2회(3cm → 8~10cm)가 당근 굵기를 정하고, 솎은 것은 반찬이 됩니다.
- 어깨 북주기, 첫서리 뒤 수확, 잎 잘라 신문지 보관까지가 한 세트.
- 화분은 깊이 30cm, 얕으면 미니 당근 품종.
올가을 당근에 도전하실 분 계신가요. 뿌리채소 파종이 몰리는 시기라 무·알타리무와 밭 배치를 어떻게 나누실지, 발아에 성공한 나만의 요령이 있으신지 댓글로 나눠주세요. 당근 씨앗과 한랭사 같은 가을 파종 자재는 여가상회에서도 준비해보겠습니다. 다음 글에서는 남부 지방 한정 막차, 가을감자 심는 일정을 다뤄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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