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장 재료 목록을 쭉 적어 보면 배추, 무, 갓, 쪽파까지는 밭에서 챙겼는데 꼭 하나가 빠져 있습니다. 양념에도 들어가고 국물에도 들어가는 대파입니다. 김장철 대파값이 뛸 때마다 한 단에 몇천 원을 주고 사자면 속이 쓰린데, 사실 대파는 텃밭 작물 중에서도 손이 덜 가는 축에 들고, 한 번 심으면 겨울을 넘겨 이듬해까지 뽑아 먹는 장수 작물입니다. 관건은 심는 시기입니다. 11월 말 김장에서 역산하면 굵은 대파가 되는 데 필요한 90일 안팎을 확보해야 하니, 대파 모종 정식은 8월 말~9월 중순이 마지노선입니다. 이 시기를 넘기면 김장 때 연필 굵기 파를 뽑게 됩니다. 모종 고르기부터 정식 요령, 흰 대를 늘리는 북주기, 마트 대파 밑동 재활용, 월동까지 정리해봤습니다.
■ 왜 씨앗이 아니라 모종인가
대파는 씨앗부터 기르면 모종 크기가 되는 데만 두 달이 걸리는 느림보입니다. 봄에 씨를 뿌려 여름에 옮겨 심고 가을 겨울에 먹는 것이 원래 일정이라, 지금 씨앗을 뿌려서는 김장은커녕 내년 봄에나 먹게 됩니다. 그래서 가을 대파는 모종 구입이 정답입니다. 8월 말~9월이면 종묘상과 시장 모종 가게에 연필 굵기쯤 되는 대파 모종이 단으로 묶여 나오는데, 한 단에 수십 포기라 몇천 원어치면 온 가족 김장과 겨울 국거리가 해결됩니다. 모종을 고를 때는 잎 끝이 마르지 않고 밑동이 단단하며 뿌리가 촉촉한 것을 고르고, 키가 크고 웃자란 것보다 짧아도 밑동이 굵은 쪽이 활착이 빠르다고 합니다.
■ 정식 — 골을 파고 세워 심기, 얕은 화분은 금물

대파 심기의 핵심은 깊은 골입니다. 삽으로 깊이 1520cm쯤 되는 골을 파고, 골 바닥에 모종을 510cm 간격으로 세워 붙인 뒤 뿌리가 덮일 만큼만 흙을 살짝 덮습니다. 골을 다 메우지 않는 것이 요령입니다. 흙을 처음부터 가득 채우면 어린 모종이 숨이 막히고, 나중에 북줄 흙도 없어집니다. 남겨 둔 골의 흙은 앞으로 몇 달에 걸쳐 조금씩 채워 넣을 밑천입니다. 심고 나서 물을 흠뻑 주고, 밑거름은 골 바닥에 퇴비를 미리 넣되 뿌리에 직접 닿지 않게 흙 한 켜를 사이에 두면 됩니다. 화분 재배라면 깊이 30cm 이상 되는 통에 심어야 북주기 흉내라도 낼 수 있습니다. 잎만 잘라 먹는 실파 용도라면 얕은 화분도 되지만, 흰 대가 있는 대파를 원한다면 깊이가 곧 성적입니다.
■ 북주기 — 흰 대는 기르는 것이 아니라 만드는 것입니다
대파의 흰 부분은 품종 덕이 아니라 흙 덕입니다. 줄기가 흙에 묻혀 빛을 못 받으면 하얗게 연해지는 것이라, 흙을 얼마나 부지런히 덮어 올리느냐가 흰 대 길이를 정합니다. 정식 후 모종이 자리를 잡고 새 잎이 올라오기 시작하면 2~3주 간격으로 골의 흙을 조금씩 긁어 넣어 밑동을 덮는데, 이때 잎이 갈라지는 지점까지 덮으면 숨구멍이 막히니 그 아래까지만 덮는 것이 철칙입니다. 김장까지 두세 번, 이후 월동 전까지 한 번 더 북주면 마트 대파 부럽지 않은 한 뼘 흰 대가 나옵니다. 북주기 때 웃거름을 한 줌씩 곁들이면 굵기가 눈에 띄게 달라진다는 것이 오래 심어온 분들의 공통된 이야기입니다.
■ 마트 대파 밑동 재활용 — 모종 못 구했을 때의 차선책
모종 시기를 놓쳤거나 몇 포기만 필요하다면 뿌리 대파 재활용이 있습니다. 마트나 시장에서 산 대파 중 뿌리가 실하게 달린 것을 골라, 밑동에서 10~15cm를 남기고 윗부분은 요리에 쓴 뒤 밑동을 흙에 심는 방법입니다. 물컵에 꽂아 기르는 방법도 유행했지만 물에서는 두어 번 자라고 나면 힘이 빠지는 반면, 흙에 심으면 새 잎이 계속 올라와 사실상 모종 한 포기 몫을 합니다. 심는 요령은 모종과 같고, 일주일이면 가운데서 새 잎이 쑥 올라오는 것이 보입니다. 다만 재활용 대파는 이미 한 번 다 자란 포기라 굵은 새 대를 기대하기보다 잎파 용도로 쓰는 것이 맞고, 김장용 굵은 대파는 역시 모종으로 가는 것이 정석입니다. 베란다 화분 두어 개에 밑동 대파를 돌려 심어 두면 겨울 라면과 계란국의 파 걱정은 던다는 정도로 보시면 되겠습니다.
■ 월동 — 얼어 죽지 않습니다, 오히려 달아집니다

대파의 큰 미덕은 추위에 강하다는 점입니다. 김장 때 다 뽑지 않고 남긴 대파는 한겨울 잎 끝이 시들어도 뿌리와 밑동이 살아 겨울을 나고, 언 땅에서 필요할 때마다 뽑아 쓰는 밭의 냉장고가 됩니다. 서리를 맞은 대파는 조직에 당분이 늘어 국에 넣으면 단맛이 확 올라온다고 합니다. 중부 내륙처럼 추위가 매서운 곳은 왕겨나 짚을 밑동에 두툼하게 덮어주면 더 안전하고, 봄이 되면 남은 포기에서 새 잎이 다시 올라와 이듬해 초여름까지 이어 먹습니다. 다만 봄에 꽃대(파꽃)가 올라오면 대가 억세지니, 꽃대가 보이는 족족 잘라주면서 그 전에 먹어 치우는 것이 순서입니다.
■ 쪽파와 대파, 헷갈리기 쉬운 차이
가을 파 심기에서 자주 나오는 혼동이 쪽파와 대파입니다. 쪽파는 마늘처럼 종구(씨쪽파)를 심는 작물로 한 알이 여러 갈래로 불어나며, 40~50일이면 수확해 파김치와 김장 양념이 됩니다. 대파는 모종을 심어 한 포기가 그대로 굵어지는 작물로, 시간이 더 걸리는 대신 흰 대와 굵은 줄기를 얻습니다. 즉 김장 파김치가 목표면 쪽파, 국물용 굵은 파가 목표면 대파이고, 심는 재료도 종구와 모종으로 다릅니다. 쪽파 심기는 김장 곁들이채소 글에서 다뤘으니, 두 가지를 한 이랑씩 나란히 넣으면 김장 파 준비는 완성입니다.
■ 병해충 — 녹병과 파밤나방, 가을 대파의 두 손님
대파는 손이 덜 가는 작물이지만 가을에 자주 보이는 손님이 둘 있습니다. 하나는 잎에 주황색 가루 반점이 도장 찍히듯 번지는 녹병입니다. 낮과 밤의 기온 차가 큰 9~10월에 잘 생기고, 배게 심어 바람이 안 통하는 이랑에서 심해진다고 합니다. 병든 잎은 보이는 대로 잘라 밭 밖으로 내보내고, 포기 사이를 넓혀 바람길을 터주는 것이 기본 대처입니다. 잎 몇 장 수준이면 새로 나는 잎을 받아먹는 데 지장이 없으니 크게 겁내실 일은 아닙니다. 다른 하나는 잎 속을 파고들어 갉아 먹는 파밤나방·파좀나방 애벌레입니다. 잎 겉에 희끗한 줄무늬 자국이 보이면 속에 애벌레가 들어 있다는 신호라, 그 잎을 통째로 잘라내는 것이 가장 확실합니다. 대파 잎은 잘라도 계속 새로 나오니 아까워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발생이 심한 밭이라면 김장 배추 이랑에 씌우는 한랭사를 대파까지 이어 씌우는 것도 방법입니다.
■ 김장까지 한눈에 — 역산 일정표
- 8월 말~9월 중순: 모종 구입과 정식, 깊은 골에 세워 심기
- 9월: 활착기, 2주간 물 관리에 집중, 새 잎 올라오면 첫 북주기
- 10월: 2~3주 간격 북주기와 웃거름, 굵기가 붙는 시기
- 11월 상순: 마지막 북주기로 흰 대 마무리
- 11월 중하순: 김장에 쓸 만큼 수확, 나머지는 밭에 세워 월동
- 12월~이듬해 봄: 필요할 때마다 뽑아 쓰는 밭의 냉장고
■ 자주 묻는 질문
Q1. 심은 지 한 달이 지났는데 굵어지질 않습니다. A. 가을 대파는 원래 처음 한 달은 뿌리 내리느라 더디고, 그 뒤부터 눈에 띄게 굵어집니다. 북주기와 웃거름을 거르지 않았다면 기다리시면 되고, 간격이 5cm보다 좁으면 솎아서 국거리로 쓰며 자리를 넓혀주는 것도 방법입니다.
Q2. 잎 끝이 노랗게 마릅니다. A. 활착기 물 부족이나 거름 부족이 흔한 원인입니다. 심고 2주까지는 흙이 마르지 않게 챙기고, 그 후라면 웃거름을 주며 상한 잎 끝은 잘라내면 새 잎이 올라옵니다.
Q3. 김장 때 다 뽑아야 하나요? A. 아닙니다. 쓸 만큼만 뽑고 나머지는 밭에 세워 두는 것이 보관보다 낫습니다. 뽑은 대파도 뿌리째 신문지에 싸서 베란다에 세워 두면 오래갑니다.
Q4. 대파 모종은 어디서 사나요? A. 8월 말~9월 종묘상, 재래시장 모종 가게, 농협 자재센터에서 단으로 팝니다. 인터넷 종자몰도 있지만 배송 중 마르는 일이 있어 가까운 시장 쪽이 무난합니다.
Q5. 웃거름은 무엇을 얼마나 주나요? A. 북주기 때마다 완숙 퇴비 한 줌씩, 또는 채소용 복합비료를 조금씩 흙에 섞어 주는 정도면 충분합니다. 잎이나 밑동에 직접 닿으면 상할 수 있으니 포기에서 한 뼘 떨어진 골에 주고 흙으로 덮는 것이 요령이고, 월동 들어가기 전 마지막 웃거름은 11월 상순 북주기 때 함께 마치면 됩니다.
Q6. 화분 대파는 겨울에 어떻게 하나요? A. 화분은 흙 부피가 작아 얼었다 녹기를 반복하는 것이 노지보다 오히려 해롭습니다. 영하로 자주 내려가는 지역이라면 화분을 건물 벽 쪽으로 붙이고 왕겨나 신문지로 흙 위를 덮어주는 것이 안전하고, 실내에 들이면 겨울에도 잎이 계속 자라 필요할 때마다 잘라 쓸 수 있습니다.
Q7. 뽑지 않고 잎만 잘라 먹으면서 키워도 되나요? A. 됩니다. 겉잎을 밑동에서 한 뼘쯤 남기고 자르면 가운데서 새 잎이 이어 나옵니다. 다만 김장용으로 굵은 대를 키우는 포기는 잎이 곧 밥줄이니 수확 전까지 건드리지 말고, 잘라 먹을 포기를 몇 개 따로 정해 두는 것이 요령입니다.
■ 정리하면
- 김장 역산 90일, 대파 모종 정식은 8월 말~9월 중순이 마지노선입니다.
- 씨앗은 너무 늦으니 가을엔 모종 구입이 정답입니다.
- 깊은 골에 세워 심고 흙은 살짝만, 남긴 흙으로 2~3주마다 북주기.
- 흰 대 길이는 북주기 횟수가 정합니다.
- 마트 대파 밑동 10~15cm 재활용은 잎파 용도로 훌륭한 차선책.
- 월동 가능, 남긴 포기는 겨울 밭의 냉장고이자 내년 봄 밑천입니다.
올겨울 파값 걱정을 밭에서 해결하실 분, 이번 주말 모종 가게부터 들러보시기 바랍니다. 대파 오래 기른 회원님들의 북주기 요령이나 월동 경험담도 댓글로 부탁드립니다. 모종철에 맞춰 호미와 왕겨 같은 가을 밭 자재는 여가상회에서도 준비해보겠습니다. 다음 글에서는 가을 모종 정식의 마지막 주자, 브로콜리와 양배추를 다뤄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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