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6월 그물망 가득 양파를 캐는 밭은, 사실 이번 달에 시작됩니다. 양파는 텃밭 작물 중에서 일정을 가장 길게 잡는 작물입니다. 10월 말11월 초에 밭에 정식할 모종을 만들려면 그보다 5055일 앞선 9월 초에 씨앗을 뿌려야 하고, 9월 초에 씨앗을 뿌리려면 8월인 지금 씨앗과 모판 자리를 준비해두어야 하니까요. 시장에서 모종을 사다 심는 방법도 물론 있지만, 양파 모종 키우기는 원하는 품종을 넉넉한 수량으로 확보할 수 있는 데다 육묘 자체의 재미가 쏠쏠해서 한 번 해본 분들은 해마다 이어가는 가을 일과입니다. 다만 양파 육묘는 날짜 싸움이라, 감으로 하면 실패하고 달력으로 하면 성공합니다. 지금부터 정식까지의 일정을 캘린더로 정리해봤습니다.
■ 왜 지금부터인가 — 양파 육묘는 역산의 농사
양파 일정은 거꾸로 계산하면 명확해집니다. 양파 모종은 서리가 잦아지기 전, 중부 기준 10월 말에서 11월 초 사이에 밭에 옮겨 심어야 뿌리가 자리를 잡고 겨울을 납니다. 좋은 모종의 기준은 정식 시점에 굵기가 연필보다 가는 나무젓가락 정도, 키 25cm 안팎, 잎 34장이라고 합니다. 이 크기가 되는 데 파종 후 5055일이 걸리니 파종은 9월 초순이 답이 됩니다. 남부 지방은 이보다 며칠 늦은 9월 중순 초입까지도 여유가 있고, 중부 내륙은 9월 첫 주를 넘기지 않는 것이 안전합니다. 그리고 파종을 제날짜에 하려면 8월 중하순인 지금 씨앗을 골라 사두고 모판 자리를 만들어두어야 합니다. 양파 씨앗은 수명이 1년 남짓으로 짧은 편이라 반드시 올해 생산된 새 씨앗을 사야 한다는 점도 지금 알아두셔야 할 대목입니다.
■ 8월 중하순 — 준비: 씨앗 고르기와 모판 자리
지금 할 일은 두 가지입니다. 첫째, 씨앗 준비. 양파는 일찍 굵어지는 조생종과 저장성이 좋은 중만생종으로 크게 나뉩니다. 이듬해 45월에 일찍 뽑아 먹고 싶으면 조생종, 6월에 수확해 가을까지 저장하며 먹을 요량이면 중만생종을 고르면 되고, 텃밭이라면 두 가지를 반씩 섞는 것도 좋은 답입니다. 봉투에 적힌 채종 연도를 꼭 확인하세요. 둘째, 모판 자리 만들기. 물 대기 편하고 한나절 이상 해가 드는 자리에 폭 1m 안팎의 두둑을 만들고, 완숙 퇴비를 미리 섞어 흙을 곱게 골라둡니다. 파종 2주 전에 거름을 넣어 흙과 어우러질 시간을 주는 것이 좋습니다. 밭이 없다면 깊이 10cm 이상의 넓은 육묘 상자나 스티로폼 상자에 상토를 채워 쓰는 방법도 충분히 통합니다. 텃밭 한 평이면 모판 한두 뼘 폭으로도 200300포기 모종이 나오니 자리 욕심은 내지 않으셔도 됩니다.

■ 9월 첫 주 — 파종: 줄뿌림, 얕게, 그리고 차광
파종 날에는 두둑에 10cm 간격으로 얕은 골을 긋고 씨앗을 1cm 간격쯤으로 줄뿌림합니다. 덮는 흙은 5mm 정도로 얕게, 씨앗이 보일 듯 말 듯한 깊이면 충분합니다. 깊이 묻으면 싹이 흙을 뚫고 나오다 지칩니다. 흙을 덮은 뒤 물을 흠뻑 주고, 그 위에 짚이나 차광망, 신문지를 덮어줍니다. 9월 초는 아직 한낮 볕이 따가워 흙이 금세 마르는데, 양파 싹은 마르면 그대로 주저앉기 때문에 발아까지 흙이 촉촉하게 유지되도록 하는 것이 파종의 성패를 가릅니다. 싹은 일주일 안팎이면 실처럼 올라옵니다. 싹이 반쯤 올라오면 덮개를 걷어 웃자람을 막고, 이후로는 겉흙이 마를 때마다 물뿌리개로 부드럽게 물을 줍니다.
■ 9월 중순~10월 중순 — 기르기: 솎기와 웃거름
모종이 5cm쯤 자라면 첫 솎기를 합니다. 촘촘한 곳을 골라 1.5cm 간격으로, 다시 열흘쯤 뒤 손가락 한 마디 남짓한 2~3cm 간격이 되도록 두 번에 나누어 솎아주면 됩니다. 아깝다고 솎기를 건너뛰면 모종 전체가 가늘고 연약해져서 결국 심을 만한 것이 없어지니, 솎기는 버리는 일이 아니라 남길 모종을 키우는 일이라고 생각하셔야 합니다. 파종 한 달쯤 지나 잎 색이 옅어지면 웃거름을 아주 조금 주거나 물비료를 묽게 타서 주고, 잡초는 보일 때마다 뽑아줍니다. 이 시기에 비가 잦으면 모판에 물이 고이지 않도록 물길을 터주는 것도 잊지 마세요.
■ 10월 말~11월 초 — 정식: 김장 채소 자리 이어받기
파종 후 50~55일, 나무젓가락 굵기에 키 25cm 안팎이 되면 밭으로 옮길 때입니다. 모판에서 모종을 살살 캐내 굵기별로 고른 뒤, 밑거름을 넣은 두둑에 15cm 안팎 간격으로 뿌리 부분만 얕게 심습니다. 너무 깊이 심으면 이듬해 구가 잘 굵어지지 않는다고 합니다. 마침 이 시기는 김장 배추·무 곁 자리가 정리되는 때라, 김장 작물 일정과 이어 붙이면 밭 회전이 자연스럽습니다. 정식 요령과 월동 관리는 정식 시기에 맞춰 따로 자세히 다루겠습니다.
■ 육묘 vs 모종 구매 — 어느 쪽이 남는 장사인가
솔직한 비교도 필요합니다. 시장 모종은 10월 말이면 한 단에 수십 포기씩 나오고 값도 부담스럽지 않아서, 100포기 이하로 심는 소규모 텃밭이라면 사서 심는 쪽이 품이 덜 드는 것이 사실입니다. 육묘가 남는 장사가 되는 경우는 이렇습니다. 심는 수량이 200포기를 넘을 때, 조생종·자색양파처럼 시장 모종에서 고르기 어려운 품종을 원할 때, 그리고 모종 상태를 처음부터 끝까지 내 눈으로 관리하고 싶을 때입니다. 시장 모종은 뽑아둔 지 오래돼 마른 것이 섞이기도 하니, 사서 심더라도 뿌리가 촉촉하고 밑동이 단단한 단을 고르는 안목은 필요합니다. 올해 육묘가 처음이라면 절반은 씨앗으로 기르고 절반은 모종을 사서 심어 비교해보는 것도 좋은 공부가 됩니다.

■ 실패 포인트 두 가지 — 웃자람과 늦은 파종
양파 육묘의 실패담은 대부분 둘 중 하나로 모입니다. 첫째는 웃자람입니다. 씨앗을 배게 뿌리고 솎지 않았거나, 거름과 물이 과했거나, 차광 덮개를 늦게 걷으면 모종이 실처럼 길고 연약하게 자랍니다. 웃자란 모종은 정식 후 쓰러지고 월동 중 얼어 죽기 쉽습니다. 둘째는 늦은 파종입니다. 9월 중하순을 넘겨 뿌리면 정식 때까지 모종이 크지 못해 겨울을 못 넘기기 쉽습니다. 반대로 너무 이른 8월 파종도 문제인데, 모종이 지나치게 굵어진 채 겨울을 나면 이듬해 봄 구가 굵어지는 대신 꽃대가 올라오는 추대가 많아진다고 합니다. 결국 양파 육묘는 제 날짜에 뿌리고, 아깝더라도 솎고, 알맞은 굵기로 기르는 것이 전부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 모판에서 보이는 이상 신호 — 이렇게 갈라 보세요
육묘 중에 모판이 이상하다 싶을 때는 이렇게 진단해보시면 됩니다. 모종이 실처럼 길고 흐늘거린다 — 배게 뿌렸거나 물과 거름이 과한 웃자람이니 솎기와 물 조절부터 합니다. 잎끝이 노랗게 마른다 — 흙이 말랐거나 웃거름이 뿌리에 닿은 비료 몸살일 수 있으니 물 관리를 점검합니다. 군데군데 모종이 쓰러지며 밑동이 잘록하게 물러 있다 — 습한 모판에서 오는 병이 흔한 원인이라고 하니, 물 주는 횟수를 줄이고 바람이 통하게 하며 상한 자리는 모종째 걷어냅니다. 싹이 드문드문하다 — 묵은 씨앗이거나 발아기에 흙이 말랐던 자리이니, 9월 중순 전이라면 빈 곳에 덧뿌림으로 만회할 수 있습니다. 모판은 좁아서 매일 한 번 들여다보는 데 1분이면 충분합니다. 그 1분이 두 달 뒤 정식할 모종의 굵기를 정합니다.
■ 달력에 옮겨 적을 요약
8월 중하순: 올해산 씨앗 구입(조생·중만생 선택), 모판 자리에 퇴비 넣기. 9월 첫 주: 줄뿌림 파종, 5mm 복토, 차광 덮개, 발아까지 수분 유지. 9월 중순: 덮개 걷기, 1차 솎기. 9월 하순10월: 2차 솎기(23cm 간격), 옅은 웃거름, 잡초 정리. 10월 말~11월 초: 나무젓가락 굵기 모종을 15cm 간격 정식. 실패 주의: 배게 뿌리기·과다 거름은 웃자람, 9월 중하순 이후는 늦은 파종.
■ 자주 묻는 질문
"씨앗은 얼마나 사야 하나요?" 발아율과 솎기를 감안하면 심으려는 포기 수의 두 배쯤 뿌린다고 잡으면 됩니다. 소포장 한 봉이면 보통 텃밭 200~300포기는 넉넉합니다.
"모판 없이 밭에 바로 뿌리면 안 되나요?" 양파는 어릴 때 잡초에 약하고 물관리가 까다로워, 좁은 모판에서 길러 옮기는 쪽이 관리가 훨씬 수월합니다. 직파는 권하지 않는 편입니다.
"베란다에서도 육묘가 되나요?" 됩니다. 해가 한나절 이상 드는 자리에 육묘 상자를 두고 같은 일정으로 기르면 되는데, 실내는 웃자라기 쉬우니 최대한 해가 강한 자리에 두세요.
"솎은 어린 모종은 버려야 하나요?" 실파처럼 요리에 쓰셔도 되고, 빈자리에 옮겨 심어 살리는 분들도 있습니다. 다만 남길 모종의 간격 확보가 우선입니다.
"작년에 쓰다 남은 씨앗이 있는데 써도 될까요?" 양파 씨앗은 묵으면 발아율이 뚝 떨어집니다. 미리 열 알쯤 젖은 휴지에 발아 시험을 해보고, 절반도 트지 않으면 새 씨앗을 사는 것이 안전합니다.
"양파 대신 쪽파나 대파도 같은 일정인가요?" 다릅니다. 쪽파는 씨쪽파를 8월 말~9월에 바로 심고, 대파는 가을엔 모종을 사서 심는 것이 정석입니다. 대파 일정은 앞서 올린 대파 가을 심기 글에 정리돼 있습니다.
"정식할 때 모종 잎을 잘라주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잎 끝을 3분의 1쯤 잘라 심으면 수분 증발이 줄어 몸살이 덜하다는 것이 오래된 요령입니다. 뿌리도 너무 길면 살짝 다듬어 심는 분들이 많은데, 상세한 정식 요령은 정식 시기에 맞춰 다시 정리하겠습니다.
■ 정리하면
① 양파는 역산의 농사, 10월 말 정식에서 거꾸로 세면 파종은 9월 초 ② 지금 할 일은 올해산 씨앗 구입과 모판 자리 준비 ③ 파종은 얕게, 발아까지 수분 유지, 솎기 두 번으로 2~3cm 간격 ④ 200포기 이상·품종 욕심이 있으면 육묘, 소규모면 모종 구매도 정답 ⑤ 실패의 두 갈래는 웃자람과 늦은 파종, 달력대로만 하면 절반은 성공.
양파 육묘에 도전하시는 회원님들의 모판 사진을 원예·텃밭 게시판에서 기다리겠습니다 🌱 양파 씨앗과 육묘 상자, 상토는 여가상회에서도 준비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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