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화단의 주인공을 하나만 꼽으라면 많은 분들이 작약을 꼽습니다. 함지박만 한 꽃송이에 향까지 좋아 마당 있는 집이라면 한 번쯤 심어보고 싶은 꽃인데, 정작 심는 시기에서 첫 단추가 잘못 끼워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봄에 꽃 시장에서 작약을 보고 그때 사다 심으면 이미 늦었다는 것, 작약 심는시기는 뿌리가 새 잔뿌리를 내리는 9월 하순~10월, 즉 가을이라는 것이 오늘 글의 결론입니다. 가을에 심어야 겨울 전에 뿌리가 자리를 잡고 이듬해 봄 순이 힘 있게 올라온다고 합니다. 그러니 지금 8월은 작약 농사의 출발선입니다. 뿌리 예약 판매가 시작되는 때이자 자리를 정할 때라, 8월부터 이듬해 5월까지를 달력 한 장으로 정리해봤습니다.
■ 시작 전에 — 작약과 모란, 헷갈리면 관리가 다 틀어집니다
꽃이 닮아 자주 섞이는데 둘은 다른 식물입니다. 모란(목단)은 나무여서 겨울에도 가지가 남고 그 가지에서 이듬해 꽃이 핍니다. 작약은 풀이어서 겨울이면 지상부가 깨끗이 사라지고 봄에 땅에서 새 순이 올라옵니다. 그래서 모란 가지를 작약인 줄 알고 겨울에 잘라버리거나, 반대로 작약의 마른 줄기를 보고 죽었다고 캐내는 사고가 생깁니다. 구별법은 간단합니다. 겨울에 목질 가지가 서 있으면 모란, 땅만 남으면 작약입니다. 개화도 모란이 4월 말로 먼저, 작약이 5월 중하순으로 뒤이어 피고, 잎도 모란은 끝이 갈라진 넓은 잎, 작약은 윤기 있는 갸름한 잎이라 잎만 봐도 구분이 됩니다. 오늘 글은 초본인 작약 기준이며, 모란은 접붙인 묘목을 심는 등 셈법이 조금 다르다는 것만 기억해 두시면 됩니다. 참고로 품종은 크게 겹꽃과 홑꽃, 흰색·분홍·진홍 계열로 갈리는데, 첫 작약이라면 튼튼하고 꽃 잘 다는 분홍 겹꽃 계열이 무난하다는 평이 많습니다. 절화용으로 기르고 싶다면 줄기가 곧고 긴 품종을 고르는 식으로, 쓰임새를 먼저 정하고 품종을 고르면 후회가 적습니다.
■ 8월(지금) — 뿌리 예약과 자리 정하기
작약은 씨앗이 아니라 뿌리(근주)로 심습니다. 89월이면 농원과 종묘상에 가을 출하 예약이 열리는데, 인기 품종은 일찌감치 마감되니 지금 주문을 걸어두는 게 첫 할 일입니다. 고르는 기준은 꽃 색보다 눈의 개수입니다. 뿌리 윗부분에 붉고 통통한 싹눈이 3개 이상 붙은 것이 상품이고, 눈이 12개뿐인 뿌리는 값이 싸도 꽃까지 12년이 더 걸린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뿌리 자체는 굵고 단단하며 무른 곳이나 곰팡이가 없어야 합니다. 자리 정하기는 주문보다 더 중요합니다. 작약은 한번 심으면 10년을 사는 데다 옮겨심기를 아주 싫어해서, 이사가 잦으면 몇 년씩 꽃을 거릅니다. 하루 6시간 이상 해가 들고 물이 고이지 않는 자리, 이 두 조건을 만족하는 곳을 이번 달에 정해두십시오. 큰 나무 밑이나 담장 바로 밑처럼 뿌리 경쟁이 심하고 그늘지는 자리는 피하고, 지난 유실수 글에서 나무 자리 잡던 기준과 같은 눈으로 보시면 됩니다. 자리가 정해졌으면 심기 2주 전쯤 미리 흙을 3040cm 깊이로 갈아엎어 퇴비를 섞어두면 심는 날 일이 절반으로 줍니다. 물 빠짐이 의심스러운 자리라면 두둑을 한 뼘 올리는 것으로 대부분 해결됩니다.
■ 9월 하순~10월 — 심는 달, 성패는 깊이에서 갈립니다

드디어 심는 달입니다. 구덩이는 지름·깊이 3040cm로 넉넉히 파고, 바닥에 잘 썩은 퇴비를 넣은 뒤 흙을 한 켜 덮어 뿌리에 거름이 직접 닿지 않게 합니다. 그 위에 뿌리를 눕히듯 앉히고 눈이 위를 향하게 한 뒤 흙을 덮는데, 여기서 작약 재배의 제1 규칙이 나옵니다. 눈 위에 덮이는 흙이 35cm를 넘으면 안 됩니다. 작약이 몇 년째 잎만 무성하고 꽃을 안 피우는 사연의 가장 흔한 원인이 바로 깊이 심기라고 합니다. 눈이 깊이 묻히면 겨울 저온 자극을 제대로 못 받아 꽃눈이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설명이 일반적입니다. 아깝다고 폭 묻는 마음을 누르고, 눈이 땅거죽 바로 아래에 살짝 숨는 정도로 얕게 심는 것이 요령입니다. 여러 포기를 심는다면 간격은 60~90cm로 넓게 잡습니다. 심은 뒤 물을 한 번 흠뻑 주고 이름표를 꽂으면 그해 일은 사실상 끝입니다.
■ 11월 — 가볍게 덮고 물은 끊습니다
땅이 얼기 전에 심은 자리 위로 낙엽이나 짚을 2~3cm 두께로 가볍게 덮어 첫겨울 추위와 건조를 막아줍니다. 단, 두껍게 쌓으면 눈을 깊이 심은 것과 같은 효과가 나니 어디까지나 얇게가 원칙입니다. 물주기는 이 시점으로 마감합니다.
■ 12~2월 — 아무 일도 없는 게 정상입니다
겨울 화단에서 작약 자리는 그냥 빈 땅입니다. 심은 게 죽었나 싶어 파보고 싶은 마음이 들 텐데, 파보는 순간 자리 잡던 뿌리를 흔드는 셈이 됩니다. 작약은 오히려 이 추위를 꼭 겪어야 봄에 꽃눈이 깨어나는 식물이라, 화분 월동 글에서 말씀드린 휴면의 원리가 여기에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겨울에 할 일은 밟지 않기, 파보지 않기, 이 두 가지뿐입니다. 이 저온 요구 때문에 작약은 오히려 추운 중부 지방에서 더 실하게 피는 꽃으로 알려져 있고, 제주처럼 겨울이 따뜻한 곳에서는 개화가 시원치 않은 경우가 있다고 합니다. 겨울 추위가 걱정이 아니라 밑천인 셈이니, 한파 소식에 작약 자리를 이불로 싸매는 수고는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 3~4월 — 붉은 순이 올라오는 달

이른 봄, 심은 자리에서 붉은 뾰족 순이 올라오면 성공입니다. 순이 보이면 겨울에 덮었던 짚을 걷어 볕을 받게 하고, 포기 주변에 웃거름을 조금 줍니다. 새순은 서리에 약한 편이라 늦서리 예보가 있으면 하룻밤 종이 상자라도 씌워주면 안전합니다. 순이 여럿 올라와도 첫해에는 솎지 말고 그대로 키워 뿌리부터 불리는 게 순서입니다. 자라면서 챙길 것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지주 세우기로, 작약은 꽃송이가 무거워 비 한 번에 폭삭 쓰러지기로 유명하니 4월 중 줄기가 무릎 높이가 되기 전에 원형 지지대나 막대를 미리 둘러줍니다. 다른 하나는 잿빛곰팡이병 예방입니다. 봄비가 잦은 해에 새순과 봉오리가 갈색으로 무르는 병인데, 포기 주변을 청결히 하고 병든 줄기는 즉시 잘라 없애는 것이 기본 대응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리고 봉오리에 개미가 잔뜩 붙어도 놀라실 것 없습니다. 봉오리가 내는 단물을 먹으러 오는 것일 뿐 꽃을 해치지 않으니 약을 칠 일이 아닙니다.
■ 5월 — 개화, 다만 첫해 기대치는 낮추셔야 합니다
여기서 현실적인 안내를 드려야겠습니다. 가을에 심은 작약이 이듬해 5월에 바로 탐스럽게 피는 경우는 눈 많은 굵은 뿌리를 심었을 때 이야기이고, 보통은 첫해에 꽃이 없거나 한두 송이 작게 피고 맙니다. 작약은 심고 23년차부터 제 실력이 나오는 꽃이라, 첫해 꽃 안 핀다고 캐서 버리는 것이 가장 아까운 실수입니다. 첫해에는 잎이 무성하게 자라기만 해도 합격이고, 꽃봉오리가 맺혀도 작으면 일찍 따서 뿌리를 불리는 편이 이듬해에 남는 장사라는 조언도 많습니다. 23년차 봄, 줄기가 여러 대 올라와 함지박 꽃이 겹으로 피는 것이 작약의 본모습이니, 이 꽃은 처음부터 3년 계획으로 심는 꽃이라고 생각하시는 게 마음 편합니다. 그 대신 한번 자리 잡은 작약은 손이 거의 안 갑니다. 병충해도 적고 가뭄도 잘 견뎌서, 해마다 봄이면 알아서 올라와 피는 10년짜리 다년초가 됩니다. 첫 2년의 기다림을 10년의 꽃으로 돌려받는 셈입니다.
■ 6월 이후 — 꽃이 진 다음의 관리가 이듬해를 만듭니다
꽃이 지면 시든 꽃송이만 잘라내고 잎과 줄기는 그대로 둡니다. 구근 글에서 말씀드린 것과 같은 원리로, 여름내 잎이 만든 양분이 뿌리에 쌓여 이듬해 꽃 밑천이 되기 때문입니다. 잎이 지저분하다고 여름에 줄기째 베어버리면 이듬해 꽃 수가 눈에 띄게 줄어듭니다. 가을에 잎이 저절로 누렇게 마르면 그때 지면 가까이에서 잘라 정리하고, 자른 잎에 병반이 있었다면 태우거나 종량제로 버려 병원균이 월동하지 못하게 합니다. 이 마른 줄기 정리가 가을 화단 청소의 한 항목이 되는 셈입니다.
■ 플랜B — 가을을 놓쳤다면, 마당이 없다면
시기를 놓쳐 봄에 심고 싶다면 뿌리가 아니라 화분에 키워둔 포트묘를 사는 방법이 있습니다. 값은 더 나가고 그해 꽃은 어렵지만 활착은 무난한 차선책입니다. 다만 봄 심기는 그해 여름 가뭄에 물을 챙겨줘야 하는 부담이 따라오니, 가능하면 정석대로 가을 뿌리 심기를 권합니다. 마당이 없다면 화분 재배도 됩니다. 다만 뿌리가 크게 벋는 식물이라 지름·깊이 40cm급 대형 화분이 필요하고, 겨울에는 실내에 들이지 말고 찬 베란다나 바깥에 두어 저온을 겪게 해야 꽃이 온다는 점이 노지와 같습니다. 오래 키운 작약이 꽃이 뜸해지면 가을에 포기를 캐서 눈 3개 단위로 나눠 다시 심는 포기나누기로 젊어지게 할 수 있는데, 이 역시 시기는 언제나 가을입니다.
■ 한 장 요약
8월 뿌리 예약·자리 선정, 9월 하순10월 눈이 얕게 심기, 11월 얇은 멀칭, 겨울은 손대지 않기, 34월 순 관리와 지주, 5월은 기대치 조절, 6월 이후 잎 지키기, 만개는 2~3년차. 실패 원인도 세 가지로 요약됩니다. 봄에 심어서, 너무 깊이 심어서, 첫해에 포기해서. 이 셋만 피하면 작약은 어지간해서 배신하지 않는 꽃으로 꼽힙니다. 해마다 5월 꽃집에서 작약 몇 단 값을 치르는 대신, 올가을 뿌리 몇 덩이를 심어 10년 피는 내 화단 작약을 만드는 쪽이 남는 계산이기도 합니다. 작약은 부지런한 손보다 기다리는 손을 좋아하는 꽃입니다. 올가을 심을 작약 품종을 정하셨다면 댓글로 나눠주시고, 같은 가을 식재 짝꿍인 튤립·수선화 구근 심기 글도 이어서 보시면 화단 계획이 완성됩니다. 뿌리와 퇴비 이야기는 여가상회에서 이어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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