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장 채소 심을 이랑은 비웠는데, 뽑아낸 고춧대는 밭 구석에 쌓여 있고 빈 이랑은 풀밭이 되어가는 8월의 텃밭. 익숙한 풍경이시라면 오늘 글이 맞춤입니다. 텃밭 정리는 한 해를 접는 뒷정리가 아니라 내년 농사의 첫 작업이라고 합니다. 병든 잔재물을 어떻게 치우느냐가 내년 병해충을 정하고, 어느 이랑에 무엇을 심었는지 기록하느냐가 내년 연작장해를 막기 때문입니다. 게시판에 자주 올라오는 질문 열한 개를 문답으로 정리해봤습니다. 위에서부터가 시간 순서이기도 하니, 차례대로 읽으시면 그대로 가을 작업 일정표가 됩니다.
Q1. 여름 작물, 언제까지 두고 언제 정리해야 하나요?
기준은 미련이 아니라 다음 작물 일정입니다. 김장 배추·무를 심을 이랑이라면 8월 중하순, 즉 지금 비워야 파종 준비가 맞물립니다. 오이·호박·옥수수처럼 이미 끝물인 작물은 바로 걷어내는 게 맞고, 고추·가지·토마토는 서리 내리기 전까지 달리기는 하지만 9월로 갈수록 열매가 잘아집니다. 요령은 이랑별로 마감일을 정하는 것입니다. 김장 이랑은 지금, 나머지는 첫서리 전 — 이렇게 두 단계로 나누면 밭 전체가 한 번에 뒤집히는 혼란이 없습니다. 김장 채소 일정은 지난 배추·무마늘 글에 정리돼 있으니 그 날짜에 맞춰 역산하시면 됩니다.
Q2. 뽑아낸 고춧대와 토마토 줄기는 어떻게 처리하나요?
밭에서 태우는 것은 이제 답이 아닙니다. 영농 부산물 소각은 산불과 미세먼지 문제로 금지·단속 대상이 된 지 오래라고 합니다. 건강한 줄기라면 잘게 잘라 퇴비 더미에 넣거나 밭 한쪽에서 삭혀 흙으로 돌려보내는 것이 정석이고, 도시 텃밭이라면 말려 부피를 줄인 뒤 종량제 봉투나 텃밭 운영처의 잔재물 수거 방식을 따르면 됩니다. 지지대·끈·비닐은 반드시 분리해서 걷어야 합니다. 흙에 섞여 들어간 끈과 비닐 조각은 몇 년을 두고 밭에서 나오는 골칫거리입니다.
Q3. 병들었던 잎과 줄기도 퇴비로 만들면 되나요?
이것만은 안 됩니다. 탄저병 든 고추, 흰가루병 든 호박잎, 역병 든 토마토 줄기를 퇴비 더미에 넣으면 병원균이 퇴비 속에서 겨울을 나고 이듬해 봄 밭 전체에 도로 뿌려지는 셈이 됩니다. 가정 퇴비 더미는 병원균을 죽일 만큼 온도가 오르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병든 잔재물과 땅에 떨어져 썩은 열매는 골라내서 밀봉 후 종량제로 버리는 것이 원칙이고, 이 선별 하나가 가을 정리에서 가장 남는 작업으로 꼽힙니다.
Q4. 같은 자리에 내년에 또 고추를 심으면 왜 안 되나요?

이어짓기, 한자어로 연작을 하면 두 가지가 쌓입니다. 그 작물만 노리는 병해충이 흙 속에 누적되고, 그 작물이 즐겨 쓰는 양분만 편식으로 고갈됩니다. 이를 연작장해라 하는데, 특히 고추·가지·토마토·감자가 속한 가지과와 오이·호박·수박의 박과가 심하기로 유명합니다. 같은 자리에 같은 과 작물을 이어 심으면 두세 해째부터 이유 없이 시들고 수확이 반토막 나는 일이 생깁니다. 인삼처럼 십수 년을 쉬어야 하는 극단적인 예도 있고, 상대적으로 덜 타는 작물도 있지만, 텃밭에서는 같은 과를 같은 자리에 2년 연속 심지 않는다 정도만 지켜도 절반은 막는다고 합니다.
Q5. 그럼 돌려짓기는 어떻게 짜면 되나요?
작물이 아니라 과(科) 단위로 생각하는 것이 핵심입니다. 밭을 서너 구역으로 나누고 가지과, 박과, 배추·무의 십자화과, 콩과 채소를 해마다 한 칸씩 옮겨 심으면 같은 자리에 같은 과가 돌아오기까지 3~4년이 걸리는 순환이 만들어집니다. 콩과는 뿌리혹박테리아가 흙에 질소를 보태주는 고마운 순번이라 지력이 떨어진 구역에 넣으면 좋습니다. 김장 배추도 십자화과 연작을 피해야 하는 건 마찬가지라, 올해 배추 이랑을 어디로 잡았는지가 내년 계획의 출발점이 됩니다. 그래서 Q11의 밭 지도가 필요해집니다.
Q6. 가을에도 밑거름을 넣어야 하나요?
김장 채소를 심는 이랑은 당연히 넣어야 하고, 시기가 관건입니다. 잘 썩은 퇴비와 밑거름은 심기 최소 1~2주 전에 넣고 갈아엎어 흙과 어우러질 시간을 줘야 하며, 덜 썩은 퇴비를 심기 직전에 넣으면 가스와 열로 뿌리가 상합니다. 빈 밭으로 겨울을 날 구역이라면 지금 서두를 것 없이 늦가을 밭갈이 때 퇴비를 넣어두는 방법이 있는데, 겨우내 흙과 삭으면서 봄에 바로 심을 수 있는 밭이 됩니다. 퇴비 고르는 눈은 지난 상토·퇴비 글을 참고하시면 됩니다.
Q7. 장마 지난 흙, 그냥 써도 되나요?
여름 장마를 통과한 밭은 눈에 안 보이는 손실이 있습니다. 빗물이 흙 속 석회 성분을 씻어 내려 산성 쪽으로 기울고, 양분도 함께 빠져나간 상태라고 합니다. 배추·시금치처럼 산성에 약한 채소를 심기 전에는 고토석회를 뿌려 중화해 주는 것이 교과서 순서이고, 석회 역시 심기 2주 전 작업입니다. 주의점 하나, 석회와 퇴비·질소비료를 같은 날 섞으면 양분이 날아가니 석회 먼저, 며칠 띄우고 거름이 순서입니다.
Q8. 호미와 전지가위, 씻어만 두면 되나요?

흙만 털어 창고에 넣는 분이 많은데, 도구는 병을 옮기는 운반책이기도 합니다. 병든 포기를 만졌던 가위와 지지대는 다음 해 그 병의 출발점이 될 수 있으니, 흙과 수액을 씻어낸 뒤 희석한 락스 물이나 소독용 알코올로 닦아 말리는 것까지가 정리입니다. 쇠 연장은 물기를 말리고 기름칠을 얇게 해두면 봄에 녹슨 호미를 새로 사는 일이 없어집니다. 지지대와 한랭사도 흙을 씻어 말린 뒤 묶어 보관하면 여러 해를 씁니다.
Q9. 빈 이랑은 겨울까지 그냥 두면 되나요?
맨땅으로 두는 것이 제일 아까운 선택입니다. 잡초가 자리를 잡고, 겨울 비바람에 흙이 쓸려나갑니다. 선택지는 셋입니다. 첫째, 호밀·헤어리베치 같은 녹비작물을 9~10월에 뿌려 겨울 동안 흙을 덮게 했다가 봄에 갈아엎어 거름으로 쓰는 방법으로, 지력까지 올려주는 상책으로 꼽힙니다. 둘째, 비닐이나 부직포로 덮어 잡초와 유실만 막는 간편한 방법. 셋째, 낙엽·짚을 덮어두는 절충안입니다. 어느 쪽이든 덮여 있는 겨울 밭이 맨땅보다 봄 흙이 부드럽다는 데는 이견이 없습니다.
Q10. 겨울에도 밭에 뭔가 심어둘 수 있나요?
빈 이랑을 놀리지 않는 월동 작물이 있습니다. 10월의 마늘·양파가 대표로, 심는 법은 지난 무마늘 글에서 다뤘습니다. 시금치도 갈래가 둘이라 지금 뿌리면 늦가을 수확, 10월에 뿌리면 월동 후 봄 수확이 되고, 자세한 내용은 가을 시금치 글에 정리했습니다. 완두도 남부라면 가을 파종으로 월동시키는 작물입니다. 김장 이랑 옆 자투리까지 계산에 넣으면, 텃밭은 사실상 겨울에도 놀지 않는 셈입니다.
Q11. 내년 봄 계획은 언제 세우는 게 좋나요?
바로 지금, 올해 밭이 아직 눈앞에 있을 때입니다. 종이 한 장에 이랑 배치를 그리고 올해 각 이랑에 심었던 작물과 잘된 것·병났던 것을 적어두는 밭 지도가 전부인데, 이것이 있어야 Q4~Q5의 돌려짓기가 가능해집니다. 겨울에 종자 목록을 짜고 2월에 감자 심을 자리를 정하는 일이 모두 이 한 장에서 출발합니다. 기억은 봄이면 반드시 흐려지니, 기록은 밭이 푸를 때 하는 것이라는 말을 남겨둡니다.
열한 문답의 결론은 하나입니다. 가을 정리는 버리는 일이 아니라 내년 밭을 심는 일이고, 그 첫 단추인 김장 이랑 비우기의 마감이 바로 이번 달입니다. 회원님들의 텃밭 정리 순서나 돌려짓기 노하우도 댓글로 나눠주시면 좋겠고, 퇴비·석회·녹비 종자 이야기는 여가상회에서 이어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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