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금치 심는시기를 봄으로 알고 계셨다면, 사실은 반대입니다. 시금치는 서늘함을 좋아하는 채소라 가을이 본 시즌이고, 봄에 뿌린 시금치는 날이 더워지면 먹기도 전에 꽃대가 올라와 억세지기 일쑤라고 합니다. 반면 8월 말~9월에 뿌린 가을 시금치는 자라는 내내 기온이 내려가는 계절을 타기 때문에 꽃대 걱정 없이 잎이 도톰하게 크고, 서리를 맞으면 오히려 달아집니다. 김장 배추와 무·마늘 글에서 말씀드렸던 것과 같은 이치로, 가을 시금치도 지금 안 뿌리면 한 해를 기다려야 하는 시즌 채소입니다. 배추 모종 심고 남은 자투리 이랑 한 줄이면 충분하니, 파종부터 수확까지 순서대로 정리해봤습니다.
■ 왜 하필 8월 말~9월인가 — 거꾸로 가는 채소
시금치는 1520도에서 가장 잘 자라고 25도를 넘으면 발아율부터 뚝 떨어집니다. 그래서 한여름 파종은 싹이 아예 안 트는 실패로 이어지기 쉽고, 너무 늦은 10월 중순 이후 파종은 겨울 전에 수확 크기까지 못 자랍니다. 8월 말9월 중순에 뿌리면 발아할 무렵 더위가 한풀 꺾이고, 파종 후 40~60일이면 수확 크기가 되니 10월 말부터 초겨울까지 밥상에 올릴 수 있는 계산이 나옵니다. 올해처럼 늦더위가 남아 있는 해라면 8월 말보다는 9월 초로 살짝 미루는 편이 발아에는 오히려 안전하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중부 기준 9월 중순, 남부 기준 9월 말까지가 가을 수확용의 마지노선으로 통합니다.
■ 가을 수확용과 월동용은 다른 농사입니다
시금치 파종은 크게 두 갈래입니다. 첫째는 방금 말씀드린 가을 수확용으로, 8월 말9월에 뿌려 늦가을에 베어 먹는 방식입니다. 둘째는 월동용으로, 10월11월 초에 뿌려 어린 상태로 겨울을 나게 한 뒤 이듬해 23월에 수확하는 방식입니다. 흔히 섬초·포항초라 불리는 겨울 시금치가 이쪽이고, 노지에서 겨울을 난 시금치는 잎이 땅에 붙듯 퍼지면서 단맛이 절정에 오릅니다. 품종도 갈립니다. 월동용은 추위에 강한 재래종 계열, 가을 수확용은 잎이 빨리 크는 개량종이 유리하니 종자 봉투 뒷면의 파종 시기 표를 꼭 확인하고 고르셔야 합니다. 오늘 글은 첫째 갈래가 중심이지만, 한 이랑을 반으로 나눠 지금 절반은 가을용, 10월에 나머지 절반은 월동용을 뿌리면 늦가을과 이듬해 봄, 두 번의 수확을 얻는 이어달리기가 됩니다. 월동용에서 주의할 점은 딱 하나, 겨울 들기 전에 너무 크게 키우지 않는 것입니다. 잎 45장의 어린 상태가 겨울나기에 가장 강하고, 가을에 다 큰 포기는 오히려 얼어 상하기 쉽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래서 월동용은 파종을 일부러 늦추는 것이고, 이 시기 계산이 월동 시금치 농사의 절반입니다.
■ 파종 전 이틀 — 씨앗 불리기와 석회

시금치 씨앗은 껍질이 단단해 그냥 뿌리면 발아가 더디고 들쭉날쭉합니다. 파종 전날 물에 1224시간 담가 불린 뒤 건져서 물기를 살짝 말려 뿌리면 발아가 눈에 띄게 고르아진다고 합니다. 하루 여유가 있다면 불린 씨앗을 젖은 천에 싸서 서늘한 곳에 두어 싹이 살짝 틀 때 뿌리는 최아 파종까지 쓸 수 있습니다. 흙 쪽 준비도 하나 있습니다. 시금치는 산성 흙을 유난히 싫어하는 채소라, 장맛비에 석회가 씻겨 내려간 여름 끝 텃밭에서는 잎이 노랗게 되며 크지 않는 일이 잦습니다. 파종 12주 전 고토석회를 뿌려 갈아엎고, 밑거름으로 잘 썩은 퇴비를 넣어두는 것까지가 준비입니다. 흙 만들기의 기본은 지난 상토·밑거름 글에 정리돼 있으니 함께 참고하시면 됩니다.
■ 줄뿌림이 정석입니다 — 뿌리기와 물주기
이랑은 폭 90100cm에 높이 1015cm면 충분하고, 시금치는 습해에 약하니 물이 잘 빠지도록 골을 확실히 내주는 게 중요합니다. 이랑에 1520cm 간격으로 얕은 골을 긋고, 골을 따라 씨앗을 12cm 간격으로 줄뿌림합니다. 흩어뿌림보다 줄뿌림이 좋은 이유는 솎음과 김매기가 쉬워서입니다. 복토는 1cm 안팎으로 얇게 덮고 가볍게 눌러준 뒤 물을 흠뻑 줍니다. 늦더위가 남은 시기라면 발아할 때까지 신문지나 차광망을 덮어 흙이 마르지 않게 하고 싹이 보이면 바로 걷어냅니다. 발아까지는 보통 5~7일이고, 이 기간에 흙이 바싹 마르면 발아가 절반으로 줄어드니 아침저녁 흙 표면만 확인해 주시면 됩니다.
■ 솎음이 곧 수확입니다
싹이 나와 잎이 23장 되면 1차로 솎아 34cm 간격을 만들고, 잎이 56장쯤 되면 2차로 솎아 최종 57cm 간격을 잡습니다. 솎음을 아까워하면 포기끼리 부대껴 전부 잔챙이가 되니, 뽑는 게 아니라 나머지를 키우는 일이라고 생각하시는 게 맞습니다. 그리고 솎은 시금치는 버리는 게 아니라 그날 저녁 국거리이자 나물입니다. 어린 시금치는 뿌리째 데쳐도 부드러워서, 솎음 단계부터 이미 수확이 시작되는 셈입니다. 본수확은 파종 4060일 뒤 잎 길이가 20cm 안팎일 때 뿌리 위를 칼로 잘라 포기째 거둡니다. 한꺼번에 다 크는 게 부담이라면 처음부터 12주 간격으로 두세 번 나눠 뿌리는 시차 파종이 답입니다. 같은 씨앗 한 봉지로 수확 기간이 한 달 넘게 늘어납니다.
■ 자라는 동안 할 일 — 물, 웃거름, 김매기
가을 시금치는 손이 적게 가는 편이지만 세 가지만 챙기면 잎 두께가 달라집니다. 물은 흙 표면이 말랐을 때 주되, 가을로 갈수록 횟수를 줄입니다. 과습하면 뿌리가 상해 잎끝부터 시들해집니다. 웃거름은 2차 솎음을 마친 뒤 한 번, 포기 사이에 옅게 주는 정도면 충분합니다. 시금치는 자람 기간이 짧아 밑거름이 제대로 들어갔다면 웃거름 없이도 크지만, 잎색이 옅어지면 그때 보충한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김매기는 어릴 때가 승부입니다. 시금치 싹은 초반에 풀에 치이면 회복이 더디니, 솎음할 때마다 골 사이 풀을 함께 매주는 습관을 들이면 따로 품이 들지 않습니다.
■ 서리 맞은 시금치가 달아지는 이유
가을 시금치의 백미는 서리 뒤에 옵니다. 기온이 영하로 내려가면 시금치는 세포 속 수분이 얼지 않도록 녹말을 당분으로 바꿔 세포액 농도를 높이는데, 말하자면 제 몸에 부동액을 만드는 셈입니다. 그 부동액이 곧 단맛이라, 서리를 몇 번 맞은 시금치가 하우스 시금치보다 눈에 띄게 단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합니다. 그러니 늦가을 한파 예보가 떠도 서둘러 다 뽑을 필요가 없습니다. 시금치는 어지간한 서리는 견디는 채소라, 필요한 만큼만 거두고 나머지는 밭에 세워둔 채 단맛이 오르기를 기다리는 게 오히려 남는 방법입니다.
■ 베란다 화분 버전 — 마당 없어도 됩니다

시금치는 뿌리가 깊지 않아 깊이 15cm 이상 화분이나 스티로폼 박스면 충분합니다. 채소용 상토를 채우고 줄뿌림 요령은 노지와 같게, 간격만 조금 좁혀 심으면 됩니다. 자리는 해가 4시간 이상 드는 창가나 베란다가 좋고, 난방 없는 베란다라면 한겨울에도 얼어 죽지 않고 천천히 자라니 조금씩 잘라 먹는 겨울 채소 화분으로 제격입니다. 물은 노지보다 마름이 빠르니 겉흙을 손가락으로 짚어보고 말랐을 때만 주면 되고, 바깥 시금치처럼 겉잎부터 한 장씩 뜯어 먹는 수확도 화분에서는 요긴한 방법입니다. 오히려 따뜻한 거실 안은 웃자라서 맛이 싱거워지니, 서늘한 자리가 명당이라는 점만 기억하시면 됩니다. 2~3주 간격으로 화분을 하나씩 늘려 파종하면 겨울 내내 끊이지 않는 시금치 릴레이가 됩니다.
■ 자주 묻는 질문
Q. 씨를 뿌렸는데 싹이 안 나옵니다. A. 십중팔구 더위 탓입니다. 25도가 넘는 흙에서는 발아가 눌려버리니, 불린 씨앗으로 9월에 다시 뿌리시면 대부분 해결됩니다. 씨앗이 2년 넘은 묵은 종자라면 발아율 자체가 떨어진 경우도 있습니다.
Q. 잎이 노랗고 크질 않습니다. A. 흙이 산성이거나 거름 부족일 가능성이 큽니다. 석회는 지금 뿌리면 다음 파종 때 효과를 보고, 당장은 웃거름을 옅게 타서 주며 지켜보시면 됩니다.
Q. 봄 시금치는 아예 못 하나요? A. 됩니다만 3~4월에 뿌려 5월 안에 먹어치우는 짧은 농사이고, 조금만 늦으면 꽃대가 올라옵니다. 시금치의 본편은 역시 가을이라는 게 중론입니다.
Q. 꽃대가 올라오면 어떻게 하나요? A. 가을 파종에서는 드문 일이지만, 낮이 길고 더울 때 뿌리면 생깁니다. 꽃대가 보이면 잎이 급격히 억세지니 그 포기는 미련 없이 바로 거둬 먹는 게 답입니다.
Q. 벌레는 안 붙나요? A. 가을 시금치는 배추 무리보다 벌레가 훨씬 덜한 편입니다. 다만 어린 싹 시기에 달팽이·야도충이 갉는 일은 있으니 발견 즉시 잡아주는 정도면 충분합니다. 김장 배추 옆 이랑이라면 배추벌레가 넘어오는 일은 거의 없으니 같이 두셔도 됩니다.
Q. 씨앗은 얼마나 뿌려야 하나요? A. 4인 가족 기준 두세 줄, 길이로 2~3m면 늦가을 반찬으로 넉넉하다는 평이 많습니다. 씨앗 한 봉지면 남을 양이니 남는 씨앗은 밀봉해 서늘한 곳에 두었다가 10월 월동용 파종에 이어 쓰시면 됩니다.
Q. 수확한 시금치는 어떻게 보관하나요? A. 씻지 않은 채 흙만 털어 신문지에 싸서 냉장하면 일주일은 갑니다. 많이 거뒀다면 데쳐서 한 끼 분량씩 냉동해 두는 게 편하고, 겨울 국거리로 요긴합니다.
정리하면, 이번 주말 씨앗 한 봉지 불려서 자투리 이랑에 줄뿌림 — 이것으로 늦가을부터 겨울 초입까지 시금치 반찬이 해결됩니다. 김장 일정과도 궁합이 좋습니다. 9월 초에 뿌린 시금치는 김장철인 11월에 한창 수확기라, 김장하는 날 밭에서 바로 뽑은 시금치로 국을 끓이는 그림이 자연스럽게 만들어집니다. 반대로 이번 주를 흘려보내고 10월에 생각나면 가을 수확은 물 건너가고 월동용 한 갈래만 남으니, 가을 시금치의 골든타임은 딱 지금부터 한 달입니다. 김장 채소 옆자리 곁들이 작물 이야기는 지난 글에서 다뤘으니, 시금치까지 넣어 가을 밭 배치를 짜보시면 좋겠습니다. 종자와 상토 이야기는 여가상회에서 이어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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