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 두는 친구를 오랜만에 만났는데 실력 차이가 너무 나서 몇 판 만에 흥이 식어버린 경험, 있으시지요? 한쪽은 시시하고 한쪽은 백전백패니 서로 미안해져 바둑판을 접게 되는 그 상황 말입니다. 바둑에는 이 문제를 수백 년 전에 해결해둔 장치가 있습니다. 바로 접바둑이에요. 하수가 미리 돌을 몇 점 깔고 시작해 실력 차이를 메우는 방식인데, 골프의 핸디캡, 장기의 차포 떼기와 같은 개념입니다. 덕분에 바둑은 실력이 하늘과 땅 차이인 두 사람도 팽팽하게 겨룰 수 있는, 취미 세계에서 드문 경기가 되지요. 급수 차이 때문에 대국 상대를 못 찾던 분, 손주에게 바둑을 가르치고 싶은 분 모두에게 필요한 지식입니다. 오늘은 접바둑 두는 법과 바둑 치수 정하는 요령, 하수와 상수 각각의 전략, 그리고 접바둑이 실력 향상에 왜 좋은지까지 한 번에 정리했습니다.
■ 접바둑이란 — 미리 깔고 시작하는 바둑
접바둑은 하수(흑)가 대국 시작 전에 정해진 자리에 돌을 2~9점 미리 놓고, 상수(백)부터 두기 시작하는 바둑입니다. 미리 놓는 돌을 치석, 몇 점을 놓느냐를 치수라고 해요. "석 점 접바둑"이면 흑이 세 점을 깔고 백이 첫수를 두는 판이라는 뜻입니다. 치수를 논할 때 쓰는 말도 몇 개 알아두시면 좋습니다. 맞바둑(호선)은 접지 않고 덤을 주며 두는 대등한 관계, 정선은 덤 없이 하수가 늘 흑을 잡는 관계로 반 점 차이쯤 되는 사이입니다. 그 위로 두 점, 석 점 하고 치수가 올라가지요. 옛 어른들이 "그 사람과는 두 점 치수"라고 하던 말이 바로 이 서열인데, 기원 문화에서는 치수가 곧 서로의 실력 관계를 부르는 호칭이기도 했습니다.
■ 치수 정하기 — 한 급수 차이에 한 점
통설은 간단합니다. 급수 차이만큼 접는다, 즉 한 급수 차이당 한 점이에요. 5급과 8급이 두면 석 점 접바둑이 출발점입니다. 인터넷 바둑 급수로도 대체로 통하는 셈법이고, 9점을 깔아도 안 되는 차이라면 애초에 승부보다 지도가 목적인 사이라고 봐야지요. 다만 이건 어디까지나 출발점이고, 실제 치수는 결과로 조정하는 게 전통입니다. 석 점으로 뒀는데 하수가 내리 세 판을 이기면 두 점으로 줄이고, 반대로 내리 지면 넉 점으로 늘리는 식이지요. 옛날 기원에는 "세 판 내리 이기면 한 점 줄인다"는 불문율이 있었다고 합니다. 자존심 상하지 않게 실력을 맞추고, 실력이 변하면 치수도 따라 움직이는, 꽤 세련된 문화예요. 처음 두는 상대와는 우선 짐작으로 치수를 정해 한두 판 두어보고 조정하면 됩니다.

■ 치석은 어디에 놓나
치석은 아무 데나 놓는 게 아니라 화점에 놓는 게 관례입니다. 2점이면 우상귀와 좌하귀 화점에 대각으로, 3점이면 거기에 우하귀 화점을 더하고, 4점이면 네 귀 화점을 전부 차지합니다. 5점부터는 한가운데 천원이 더해지고, 6점은 천원 대신 좌우 변의 화점, 7점은 거기에 천원, 8점은 네 귀와 네 변의 화점, 9점이면 화점 아홉 자리가 모두 흑돌로 채워지는 장관이 되지요. 세세한 배치는 바둑판이나 앱이 안내해주니 외우실 필요는 없습니다. 중요한 건 그림의 의미예요. 포석 기초 글에서 화점이 속도와 세력의 자리라고 말씀드렸는데, 접바둑의 흑은 그 세력 요지를 공짜로 다 가진 채 출발하는 셈입니다. 시작부터 판 전체에 요새를 깔아둔 형국이지요.
■ 하수의 전략 — 세력을 믿고, 싸움을 피하지 않기
접바둑 하수가 제일 많이 저지르는 실수는 아이러니하게도 "너무 겁내는 것"입니다. 미리 깔아둔 화점 돌들은 전부 세력의 돌인데, 백이 으름장을 놓으면 귀퉁이로 움츠러들어 그 좋은 세력을 놀리는 것이지요. 그렇게 수비만 하다 보면 아홉 점을 깔고도 야금야금 다 내주고 집니다. 접바둑에서 흑의 밑천은 두터움이니, 백이 무리하게 뛰어들면 오히려 반갑게 몰아붙이는 게 정수예요. 내 화점 돌들이 사방에서 응원하고 있으니 싸움은 언제나 홈경기라는 걸 기억하세요. 중반전 글에서 다룬 "싸움은 내가 강한 쪽에서"가 접바둑 흑에게는 거의 판 전체에서 성립합니다. 다만 잡으러만 쫓아다니지는 마세요. 같은 글에서 말씀드렸듯 공격은 몰면서 집을 챙기는 것이고, 백이 여기저기서 사는 동안 나머지 땅을 내 것으로 굳히면 그걸로 이깁니다.
■ 상수의 전략 — 판을 복잡하게
반대로 백을 잡은 상수는 순리대로 두면 그냥 집니다. 애초에 몇 수 손해를 안고 시작했으니까요. 그래서 상수는 판을 일부러 복잡하게 만듭니다. 여기저기 돌을 흩어 놓아 싸움판을 여러 개 벌이고, 하수가 읽기 어려운 국면으로 끌고 가서 실수를 기다리는 것이지요. 정석에 없는 수, 살짝 무리한 수도 접바둑 백의 단골 수단입니다. 하수 입장에서는 얄밉지만 이게 접바둑의 묘미이기도 합니다. 백의 노림에 한두 번 당해보면 다음 판엔 그 수가 보이기 시작하거든요. 상수 노릇의 예의도 하나 있습니다. 이기더라도 하수가 어디서 잘못했는지 한두 수 짚어주는 것, 옛 기원에서 내려오는 지도 바둑의 미덕입니다. 짚어주는 한 수가 승패보다 오래 남는 법이지요.

■ 접바둑이 실력을 늘려주는 이유
접바둑은 봐주는 바둑이 아니라 훌륭한 훈련입니다. 하수는 유리한 세력을 어떻게 굴리는지, 다 이긴 판을 어떻게 마무리하는지를 배웁니다. 사실 우세한 판을 지키는 기술은 열세인 판 뒤집기보다 어렵다는 말도 있지요. 상대의 흔들기를 견디는 배짱도 접바둑에서 큽니다. 상수는 상수대로 불리한 출발을 뒤집는 수단과 얇은 돌 운영을 연마하게 되고요. 그리고 무엇보다 치수를 줄여가는 재미가 있습니다. 넉 점에서 석 점으로, 석 점에서 두 점으로 줄어드는 과정은 급수 숫자보다 훨씬 생생한 성장 기록이에요. "십 년 만에 형님과의 치수를 두 점 줄였다"는 이야기가 바둑 동네에서는 최고의 자랑거리로 통합니다. 이기고 지는 것보다 치수가 움직이는 순간이 더 짜릿하다고들 하지요.
■ 손주와, 친구와 — 치수 맞춰 두는 문화
접바둑의 진짜 가치는 함께 둘 수 있는 상대가 넓어진다는 데 있습니다. 바둑을 갓 배운 손주에게 아홉 점을 깔게 하면 할아버지와 손주의 진검승부가 성립하고, 실력 차 나는 옛 친구와도 치수만 맞추면 저녁 내기 바둑이 됩니다. 아홉 점 깔린 판에서 진땀 흘리는 할아버지 모습만큼 좋은 바둑 교육도 없다고 하지요. 아이는 이기는 재미로 바둑에 붙고, 어른은 치수가 줄어드는 손주의 성장을 눈으로 봅니다. 혼자 두실 때도 방법이 있습니다. 예전 바둑 앱 비교 글에서 소개한 대국 앱들은 인공지능 상대 대국에서 접바둑 설정을 지원해요. 대국 시작 화면에서 치석(핸디캡) 수를 2~9점으로 고르면 자동으로 화점에 돌이 깔리고, 인공지능의 기력도 단계별로 고를 수 있습니다. "석 점 놓고 이기면 다음엔 두 점"식으로, 혼자서도 치수 줄이는 재미를 그대로 누릴 수 있는 셈이지요.
■ 자주 묻는 질문
"접바둑에도 덤이 있나요?" 원칙적으로 없습니다. 덤은 맞바둑에서 흑의 선착 이득을 메우는 장치인데, 접바둑은 애초에 치석으로 차이를 메웠으니까요. 다만 인터넷 대국에서는 무승부 방지로 반집 덤을 붙이기도 하니 설정 화면을 확인하시면 됩니다.
"치석을 화점 말고 내 마음대로 놓으면 안 되나요?" 자유 배석이라고 해서 원하는 자리에 놓는 방식도 있긴 합니다. 다만 표준은 화점 배치이고, 앱과 대회 규정도 대부분 화점 기준이라 처음에는 관례대로 두시는 걸 권합니다. 화점 배치 자체가 세력 바둑을 배우는 좋은 교재이기도 하고요.
"몇 점부터 시작하는 게 좋은가요?" 상대와의 급수 차이를 모르겠다면 석 점으로 한 판 두어보세요. 결과가 일방적이면 한 점씩 조정하면 됩니다. 인공지능 상대라면 이길락 말락 한 치수, 그러니까 승률이 반반쯤 되는 치수가 제일 공부가 된다고 합니다.
"접바둑만 두면 맞바둑 실력이 늘지 않는다던데요?" 반은 맞고 반은 과장입니다. 접바둑 흑은 포석 감각을 기를 기회가 적은 건 사실이라, 접바둑과 함께 포석 글에서 소개한 원칙 공부를 병행하시면 됩니다. 치수가 두 점 안쪽으로 줄면 자연스럽게 맞바둑으로 넘어가는 게 보통 순서입니다.
"손주가 자꾸 지니까 토라집니다." 치수를 한 점 늘려주세요. 접바둑의 좋은 점은 봐주는 티를 안 내고도 승부를 맞출 수 있다는 겁니다. 일부러 져주는 것보다 치수를 늘려 정정당당하게 지는 편이 아이 교육에도 낫다고 하지요.
"9줄·13줄 작은 판에도 접바둑이 있나요?" 있습니다. 판이 좁아 치석 한 점의 위력이 훨씬 크기 때문에 두세 점이면 큰 차이도 메워져요. 바둑 두는 법 글에서 소개한 것처럼 입문자는 9줄 판부터 시작하는 경우가 많은데, 손주와의 첫 대국이라면 9줄 판에 두 점 접바둑이 부담 없는 출발점입니다.
■ 정리하면
① 접바둑은 하수가 화점에 2~9점을 깔고 시작하는 핸디캡 바둑 ② 치수는 급수 차이만큼이 출발점, 세 판 내리 이기면 한 점 줄이기 ③ 하수는 세력을 믿고 싸움을 피하지 말 것 ④ 상수는 판을 흔들되 이기면 한 수 가르쳐줄 것 ⑤ 접바둑은 하수에게도 상수에게도 좋은 훈련 ⑥ 앱의 치석 설정으로 혼자서도 연습 가능. 바둑이 다른 취미와 다른 점이 있다면, 실력 차이가 만남의 장벽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테니스는 실력 차가 크면 랠리가 안 되고 골프도 내기가 안 붙지만, 바둑은 치수만 맞추면 아홉 살 손주와 여든 어르신이 같은 판에서 진심으로 겨룰 수 있으니까요. 실력 차이는 바둑을 접을 이유가 아니라 치수를 정할 이유일 뿐입니다. 회원님들은 지금 누구와 몇 점 치수인가요? 형제간, 부자간, 오랜 친구 사이의 치수에는 저마다의 세월과 사연이 들어 있게 마련이지요. 바둑 게시판에 "우리 집 치수 서열"을 올려주시면, 치수 줄인 무용담과 함께 재미있게 읽겠습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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