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자를 1년에 두 번 캘 수 있다는 사실, 알고 계셨나요. 봄에 심어 6월에 캐는 봄감자가 기본이지만, 남부 지방에서는 8월에 심어 서리 전에 캐는 가을감자가 가능합니다. 갓 캔 가을감자를 겨우내 두고 먹는 재미에 해마다 두 번 심는 분들이 적지 않습니다. 다만 이 농사는 시간표가 유난히 빡빡합니다. 감자가 굵어지는 데 90~100일이 필요한데 11월 중하순이면 서리가 오니, 심는 날짜가 며칠만 늦어도 알이 차기 전에 시즌이 끝나 버립니다. 남부 기준 8월 중하순, 늦어도 8월 말이 파종 마지노선인 이유입니다. 그리고 봄감자만 심어본 분들이 꼭 한 번씩 실패하는 함정이 있습니다. 씨감자를 봄처럼 잘라 심으면 안 된다는 점입니다. 지금부터 씨감자 준비, 파종, 물관리, 수확, 보관까지 주 단위 캘린더로 정리해봤습니다.

먼저 냉정한 현실 하나. 이 캘린더는 남부 지방(경남·전남 해안과 제주, 대구·광주 등 남부 내륙 일부) 기준입니다. 중부 지방은 첫서리가 10월 하순~11월 초에 오는 해가 많아, 8월 말에 심어도 생육 일수가 모자라 알이 잘아지기 일쑤입니다. 중부에서 굳이 도전한다면 아주 이른 파종과 서리 대비 부직포 덮기까지 각오해야 하고, 그보다는 같은 시기에 심는 김장 무·당근·시금치 쪽이 훨씬 남는 선택이라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입니다. 중부 이북이신 분들은 이 글을 내년 남부 나들이 텃밭이나 상식 차원으로 읽어주시면 되겠습니다.

■ 8월 첫째~둘째 주 — 씨감자 구하기와 싹틔우기

가을감자의 시작은 씨감자 확보입니다. 봄에 캔 감자를 그냥 심으면 휴면이라고 해서 잠에서 깨지 않아 싹이 늦게 나오니, 종묘상이나 농협에서 휴면이 풀린 가을 재배용 씨감자를 사는 것이 안전합니다. 품종은 휴면 기간이 짧은 추백, 대지 등이 가을 재배용으로 꼽힙니다. 씨감자를 구했으면 바로 산광 싹틔우기에 들어갑니다. 직사광선이 아닌 밝은 그늘, 바람 잘 통하는 처마 밑 같은 곳에 씨감자를 한 겹으로 펼쳐 두면 1~2주 사이 짧고 통통한 초록 싹이 올라옵니다. 이 과정을 거친 씨감자는 심자마자 출발하니, 짧은 가을 시즌에서 열흘을 버는 셈입니다.

■ 8월 중하순 — 파종, 씨감자는 반드시 통째로

여기가 이 글의 핵심입니다. 봄감자는 씨감자를 두세 조각으로 잘라 심는 것이 상식이지만, 가을감자는 통째로 심어야 합니다. 8월 땅은 뜨겁고 습해서 자른 단면이 아물기 전에 썩어 버리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가을감자 실패담의 대부분이 봄 버릇대로 잘라 심었다가 밭에서 녹아 버린 경우라고 합니다. 그래서 가을용 씨감자는 달걀보다 작은 3050g짜리 통감자를 고르는 것이 요령입니다. 심는 법은 이랑을 지어 깊이 10cm 안팎으로 골을 내고, 싹이 위로 가게 씨감자를 놓은 뒤 흙을 57cm 덮습니다. 포기 사이 2530cm, 줄 사이 6070cm가 표준입니다. 밑거름은 잘 삭은 퇴비를 파종 전에 넣되, 씨감자에 직접 닿으면 부패를 부추기니 골 옆에 넣거나 흙과 잘 섞어줍니다. 검정 비닐 멀칭 대신 짚이나 풀을 덮어 지온을 낮춰주는 것도 8월 파종의 요령으로 통합니다.

■ 9월 — 싹 관리와 물관리, 더위와의 줄다리기

파종 후 2~3주면 싹이 올라옵니다. 한 씨감자에서 줄기가 여럿 나오면 튼튼한 것 두 개쯤만 남기고 곁의 것을 뽑아주는데, 이때 씨감자가 딸려 나오지 않게 밑동을 누르고 뽑습니다. 9월 물관리는 줄타기입니다. 초가을 늦더위에 흙이 바짝 마르면 생육이 멈추니 가물 때는 아침저녁 서늘한 시간에 물을 주고, 반대로 태풍이나 가을장마로 물이 고이면 씨감자부터 썩으니 이랑을 높여 배수로를 터주는 것이 먼저입니다. 가을감자는 봄보다 진딧물이 극성이라는 지적도 많으니 잎 뒷면을 가끔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 9월 말~10월 초 — 북주기, 감자를 굵히는 손질

줄기가 20cm쯤 자라면 포기 밑동에 흙을 끌어 올려 덮는 북주기를 합니다. 감자알은 씨감자보다 위쪽 줄기에서 달리기 때문에 흙을 덮어줄수록 알 달릴 자리가 늘고, 흙 밖으로 드러난 감자가 햇빛에 푸르게 변하는 것도 막아줍니다. 2주 간격으로 두 번, 웃거름을 조금 곁들이면 더 좋습니다. 10월로 넘어가면 날이 서늘해지면서 감자가 본격적으로 굵어지는 시기라, 이때는 흙이 마르지 않게만 지켜보면 됩니다.

■ 11월 서리 전 — 수확, 하루라도 늦으면 손해

가을감자 수확의 신호는 두 가지입니다. 잎줄기가 누렇게 시들기 시작했거나, 첫서리 예보가 떴거나. 둘 중 먼저 오는 쪽이 수확일입니다. 서리를 세게 맞으면 줄기가 무너지고 땅속 감자도 얼 수 있으니, 일기예보에서 아침 최저기온이 0도 근처로 내려간다면 그 전 맑은 날을 골라 캡니다. 호미보다는 삽이나 쇠스랑으로 포기에서 한 뼘쯤 떨어져 흙을 뒤집어야 감자에 상처가 안 납니다. 캔 감자는 밭에서 한나절 그늘에 말려 흙을 털어내는데, 봄과 달리 늦가을 볕이라도 오래 두면 푸르게 변하니 반나절이면 충분합니다.

■ 11월 이후 — 보관, 가을감자가 봄감자보다 나은 점

가을감자의 진짜 매력은 보관입니다. 봄감자는 한여름을 나느라 금세 싹이 트고 무르지만, 가을감자는 캐자마자 서늘한 계절로 들어가니 조건이 훨씬 좋습니다. 상처 나거나 파인 것은 먼저 먹을 것으로 빼고, 성한 것만 종이 상자에 신문지를 깔아 담아 얼지 않는 서늘하고 어두운 곳(3~5도 안팎)에 두면 한겨울을 지나 봄까지 갑니다. 사과와 같이 두면 사과가 내뿜는 가스가 싹 트는 것을 늦춰준다는 요령도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빛이 들면 푸른 감자가 되니 상자 뚜껑은 꼭 덮어두시기 바랍니다.

■ 텃밭이 없다면 — 자루·상자 재배도 됩니다

남부의 아파트 베란다나 옥상이라면 흙이 20L 이상 들어가는 큰 화분, 스티로폼 상자, 시판 감자 재배용 자루로도 가을감자가 됩니다. 조건은 세 가지입니다. 첫째, 깊이 30cm 이상 되는 통에 흙을 절반만 채우고 씨감자를 심은 뒤, 줄기가 자라는 대로 흙을 몇 차례 더 부어 올리는 식으로 북주기를 대신합니다. 둘째, 배수 구멍이 넉넉해야 합니다. 8월 파종 직후 소나기 한 번에 물이 고이면 씨감자가 그대로 썩습니다. 셋째, 하루에 해가 5~6시간은 드는 자리여야 알이 찹니다. 상자 하나에 씨감자는 한두 알이 적당하고, 욕심내어 세 알을 넣으면 오히려 알이 잘아집니다. 수확량은 포기당 대여섯 알 정도로 밭보다 소박하지만, 흙을 통째로 쏟아부으며 감자를 줍는 재미는 밭 못지않다는 후기가 많습니다.

■ 한눈에 보는 가을감자 캘린더

  • 8월 상순~중순: 가을용 씨감자 구입(추백·대지 등), 밝은 그늘에서 산광 싹틔우기
  • 8월 중하순~말: 파종 마지노선. 씨감자 통째 심기, 퇴비는 직접 닿지 않게, 짚 덮기
  • 9월 상순: 싹 출현, 포기당 줄기 2개로 정리
  • 9월 내내: 가뭄엔 아침저녁 물, 비 오면 배수, 진딧물 점검
  • 9월 말~10월 초: 북주기 2회 + 웃거름
  • 11월 상중순: 잎 시들거나 서리 예보 뜨면 즉시 수확
  • 11월 이후: 반나절 그늘 건조 후 어두운 저온 보관, 봄까지 두고 먹기

■ 자주 묻는 질문

Q1. 봄에 캐서 먹다 남은 감자를 심으면 안 되나요? A. 권하지 않습니다. 감자는 캔 뒤 두세 달 잠을 자는 휴면 기간이 있어, 봄감자를 8월에 심으면 싹이 나오기까지 시간을 다 잡아먹고 서리 전에 알을 굵힐 수 없습니다. 휴면이 풀린 상태로 나오는 가을 재배용 씨감자를 사는 것이 가장 확실합니다.

Q2. 심은 지 3주가 넘었는데 싹이 안 보입니다. A. 한 포기만 살짝 파서 확인해보시기 바랍니다. 씨감자가 단단하고 싹눈이 살아 있으면 더위에 출발이 늦어진 것이니 기다리면 되고, 물러 있다면 부패한 것입니다. 8월 파종은 더위 탓에 부패 결주가 얼마간 나오는 것이 보통이라, 씨감자를 살 때 한두 줌 여유 있게 사서 싹틔워 두었다가 빈자리를 메우는 것이 요령입니다.

Q3. 캔 감자 일부가 초록빛으로 변했습니다. 먹어도 되나요? A. 초록 부분에는 솔라닌이라는 성분이 있어 쓴맛이 나고 많이 먹으면 탈이 날 수 있다고 합니다. 초록 부분과 싹눈 주변을 도톰하게 도려내고 먹거나, 변색이 넓게 퍼졌으면 아깝더라도 빼는 것이 안전합니다. 캐낸 뒤 빛을 막아 보관하는 것이 근본 예방입니다.

Q4. 가을에 캔 감자를 내년 봄 씨감자로 써도 되나요? A. 됩니다. 가을감자는 겨울을 나는 동안 자연스럽게 휴면이 풀려 봄 파종 시기와 맞아떨어지기 때문에, 예부터 가을감자를 봄 씨감자로 이어 쓰는 집이 많았다고 합니다. 병반 없이 성한 30~50g짜리를 골라 얼지 않는 곳에 보관했다가 쓰시면 됩니다.

Q5. 봄에 감자 심었던 자리에 가을감자를 또 심어도 되나요? A. 피하는 것이 좋습니다. 감자는 가지과라 같은 자리에 이어 심으면 흙에 남은 병이 이어지기 쉽고, 고추·토마토·가지를 키웠던 자리도 같은 식구라 마찬가지입니다. 이어짓기가 불가피하다면 씨감자만큼은 병 없는 검증품을 쓰고, 이랑을 높여 물빠짐이라도 확실히 해두는 것이 차선입니다.

Q6. 가을감자도 꽃이 피나요? 꽃은 따줘야 하나요? A. 봄보다는 드물지만 핍니다. 꽃이 알 굵기를 크게 빼앗지는 않는다는 쪽과 그래도 따주는 것이 낫다는 쪽이 갈리는데, 텃밭 규모에서는 보이는 대로 따준다고 손해 볼 일은 없습니다. 꽃보다 중요한 것은 그 시기의 물 관리와 북주기입니다.

정리하면 가을감자는 남부 한정, 8월 말까지 통째로 심는 것, 이 두 가지만 기억하면 절반은 성공입니다. 나머지는 북주기와 서리 전 수확이라는 봄감자와 같은 문법입니다. 남부에 텃밭을 두신 분들, 올가을 감자 심으실 계획이 있으신가요. 지역별 첫서리 날짜나 가을 재배 잘되는 품종 정보를 댓글로 나눠주시면 다른 회원님들께 큰 도움이 되겠습니다. 가을 재배용 씨감자와 재배 자루 같은 자재는 여가상회에서도 준비해보겠습니다. 다음 글에서는 남부 중부 가리지 않고 한 달이면 밥상에 오르는 열무와 쑥갓을 다뤄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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