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장 농사의 성패는 심는 날이 아니라 심고 난 뒤 한 달, 그러니까 9월에 갈린다는 말이 있습니다. 8월 말 배추 모종을 정성껏 심고 무 씨앗까지 넣고 나면 한숨 돌리고 싶어지지만, 정작 벌레와 병은 그때부터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김장 배추 모종 심기와 무·마늘 파종은 지난 글에서 다뤘으니, 오늘은 그다음 단계인 지키는 이야기입니다. 김장 배추와 무를 무너뜨리는 3대 적은 배추 무름병, 벼룩잎벌레, 청벌레로 압축됩니다. 우리 밭이 지금 어느 정도 위험한지, 아래 문항부터 체크해 보시기 바랍니다.
☑ 우리 밭 자가점검 — 해당 항목에 표시해 보세요
☑ 어린 배추·무 잎에 바늘로 콕콕 찌른 듯한 작은 구멍이 늘고 있다 ☑ 잎 가장자리가 큼직하게 뜯겨 나갔고, 잎 위에 초록색 똥 부스러기가 보인다 ☑ 밭 위로 흰나비가 자주 날아다닌다 ☑ 한낮에 축 처졌던 포기가 다음 날 아침에도 회복되지 않는다 ☑ 포기 밑동이 물컹하게 갈색으로 변했거나 고약한 냄새가 난다 ☑ 비 온 뒤 이랑 골에 물이 한나절 넘게 고여 있다 ☑ 작년에도 같은 자리에 배추·무·열무 등 배추과 작물을 심었다 ☑ 한랭사 없이 맨 이랑에서 키우고 있다 ☑ 심고 나서 잎 뒷면을 들여다본 적이 한 번도 없다
02개면 아직 예방 단계로 관리하면 되고, 35개면 이번 주말 안에 손을 써야 하는 상태, 6개 이상이면 이미 피해가 진행 중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제 문항 하나하나가 어떤 적과 연결되는지 풀어보겠습니다.
■ 첫 번째 적, 무름병 — 냄새로 먼저 알아챕니다
밑동이 물컹해지고 시큼하면서 고약한 냄새가 나는 증상, 이것이 배추 무름병입니다. 세균이 일으키는 병이라 일단 번지면 치료약이 사실상 없고, 멀쩡하던 포기가 며칠 만에 주저앉기 때문에 김장 농사에서 가장 무서운 병으로 꼽힙니다. 세균은 물과 상처를 타고 들어옵니다. 그래서 예방의 답도 두 가지, 물빠짐과 상처 관리입니다.
먼저 물빠짐입니다. 이랑을 20cm 이상 높이고 골에 물이 고이지 않게 배수로를 터주는 것이 기본입니다. 자가점검에서 물 고임 항목에 표시하셨다면 지금이라도 삽으로 골 끝을 터서 물길을 내주시기 바랍니다. 물을 줄 때도 요령이 있습니다. 포기 위에서 잎에 끼얹듯 주면 물방울을 타고 세균이 옮겨 다니니, 포기 사이 흙에 대고 주는 것이 안전하고, 저녁 늦게 주어 밤새 잎이 젖어 있는 상태를 만드는 것도 피하는 게 좋습니다. 초기 증상을 빨리 알아채는 것도 중요합니다. 겉잎 아래쪽 잎자루에 물에 데친 듯한 반투명한 얼룩이 생기는 것이 첫 신호인데, 이 단계에서 그 잎만 떼어내고 주변을 말려주면 포기 전체는 건지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다음은 연작 문제입니다. 무름병균은 흙 속에 남아 이듬해를 기다리므로, 작년 배추 자리에 올해 또 배추를 심으면 위험이 몇 배가 됩니다. 자리를 못 바꿨다면 심기 전 석회를 넣어 흙을 중화하고, 밑거름 질소를 과하게 주지 않는 것이 차선책입니다. 질소가 과하면 잎이 무르고 연해져 세균이 파고들기 쉬워집니다. 마지막으로 상처 관리인데, 이 상처의 대부분이 바로 벌레가 갉은 구멍입니다. 결국 벌레를 막는 일이 곧 무름병 예방이 되는 셈입니다. 이미 무른 포기는 아깝더라도 뿌리째 뽑아 밭 밖으로 버리고, 그 자리는 손과 호미를 씻은 뒤 다른 포기를 만져야 번짐을 막을 수 있습니다.

■ 두 번째 적, 벼룩잎벌레 — 어린잎 시절에 승부가 납니다
잎에 좁쌀 같은 구멍이 촘촘히 뚫려 있다면 벼룩잎벌레입니다. 2~3mm짜리 까만 벌레가 벼룩처럼 톡톡 튀어 다니며 갉는데, 워낙 작고 빨라 손으로는 잡기 어렵습니다. 문제는 이 벌레가 떡잎과 어린 본잎 시기에 집중적으로 달려든다는 점입니다. 다 자란 배추는 구멍 몇 개쯤 견디지만, 본잎 두세 장짜리 어린 무·배추는 며칠 만에 잎이 그물처럼 되어 주저앉습니다. 게다가 애벌레는 흙 속에서 무 뿌리 표면을 갉아 검은 흠집을 남기니, 김장 무 품질까지 떨어뜨리는 이중 피해가 됩니다. 대처는 예방이 거의 전부입니다. 씨앗을 뿌리거나 모종을 심는 즉시 한랭사를 씌워 아예 접근을 막는 것이 가장 확실하고, 심기 전 밭을 깊이 뒤집어 흙 속 애벌레와 번데기를 햇빛에 노출시키는 것도 밀도를 줄여줍니다. 이미 구멍이 늘고 있다면 피해 잎을 정리하고 텃밭용 친환경 살충제를 잎 앞뒤로 뿌리되, 벌레가 둔해지는 아침 이슬 시간대에 작업하는 것이 효과적입니다.
■ 세 번째 적, 청벌레 — 흰나비가 날면 이미 시작입니다
밭 위로 배추흰나비가 팔랑거리며 날아다니는 풍경은 한가로워 보여도, 텃밭 입장에서는 경보입니다. 흰나비가 잎 뒷면에 낳은 노란 알이 열흘 안에 청벌레가 되어 잎을 큼직큼직하게 뜯어 먹기 시작합니다. 잎 위에 초록색 배설물 부스러기가 보이면 근처에 반드시 청벌레가 있으니, 잎 뒷면과 잎맥 사이를 뒤져 손으로 잡아내는 것이 가장 빠릅니다. 몸집이 커서 눈에 보이는 만큼 잡히는 벌레라, 일주일에 두 번만 순찰해도 피해가 크게 줄어듭니다. 개체 수가 많다면 배추과 벌레에 잘 듣는 BT제 같은 미생물 살충제가 무난한 선택입니다. 사람과 천적에게 부담이 적어 텃밭용으로 널리 쓰입니다. 약 없이 잡는 요령은 진딧물·응애 천연 방제를 다룬 지난 글과 겹치는 부분이 많으니 함께 참고하시면 좋습니다.
■ 그 밖의 불청객 — 배추좀나방과 진딧물
3대 적만큼은 아니어도 가을 배추밭에 자주 오는 손님이 둘 더 있습니다. 배추좀나방 애벌레는 청벌레보다 훨씬 작은 연두색 벌레로, 잎 뒷면에 붙어 잎 표면만 얇게 갉아 흰 창문 같은 자국을 남깁니다. 작다고 얕보면 결구 속으로 파고들어 김장 때 속잎에서 나오는 주범이 되니, 청벌레 순찰 때 함께 살펴야 합니다. 진딧물은 날이 서늘해지는 9월 말부터 어린 속잎에 모여드는데, 즙을 빨면서 바이러스병까지 옮기니 발견 즉시 잡는 것이 원칙입니다. 초기엔 물을 세게 쏘아 떨어뜨리거나 난황유 같은 천연 자재로 충분히 눌러집니다.
■ 결국 근본 대책은 한랭사 하나로 모입니다

세 가지 적을 따로 설명했지만, 예방책을 한 줄로 줄이면 한랭사 터널입니다. 벼룩잎벌레와 흰나비의 접근을 물리적으로 차단하니 살충제 횟수가 줄고, 벌레 구멍이 없으니 무름병 세균의 침입구도 함께 막힙니다. 활대(반원 지지대)를 1m 간격으로 꽂고 그 위에 한랭사를 덮은 뒤, 가장자리를 흙으로 꼼꼼히 눌러주면 끝입니다. 가장자리가 들뜨면 그 틈으로 나비가 들어가 안에서 번식하는 역효과가 나니 밀봉이 핵심이고, 씌우기 전에 이미 붙어 있는 벌레가 없는지 잎 뒷면을 한 번 확인하고 덮어야 합니다. 4m 이랑 기준 활대와 한랭사 비용은 2~3만 원 선인데 여러 해 다시 쓸 수 있으니, 약값과 속 썩는 값을 생각하면 남는 투자라는 평이 많습니다. 물은 한랭사 위로 그냥 주면 되고, 배추가 자라 천장에 닿기 전까지는 걷을 일도 없습니다. 김장 곁들이 채소 글에서 알타리무 무청을 지키는 요령으로도 한랭사를 권했는데, 갓·알타리무·열무까지 배추과는 전부 같은 벌레가 붙으니 이랑째 함께 덮으면 일석삼조가 됩니다. 한 가지 주의점은 시기입니다. 심고 나서 벌레가 보이기 시작한 뒤에 덮는 것은 늦습니다. 벼룩잎벌레는 심은 지 하루 이틀 안에 찾아오니, 한랭사는 심는 날 함께 설치한다고 기억해 두시는 게 정확합니다.
■ 왜 9월이 방어 골든타임인가
9월 상순부터 중순까지는 늦더위로 벌레 번식이 가장 왕성한 시기이면서, 동시에 배추가 아직 결구(속이 차는 것) 전이라 회복력이 남아 있는 시기입니다. 이때 막아낸 밭은 10월에 편안하고, 이때 뚫린 밭은 결구가 시작된 뒤 벌레가 속으로 파고들어 손도 약도 닿지 않게 됩니다. 무도 마찬가지로 파종 후 한 달이 뿌리 굵기를 결정하는데, 이 시기 잎이 벌레에 뜯기면 뿌리 크는 힘이 꺾입니다. 반대로 10월 중순 서리가 내리기 시작하면 벌레 활동은 자연히 잦아드니, 결국 방어전은 9월 한 달 싸움입니다.
이 한 달을 버티는 순찰 루틴을 하나 제안하면 이렇습니다. 주 2회, 밭에 가는 날마다 5분씩만 세 가지를 봅니다. 첫째, 밭 전체를 한 바퀴 돌며 처진 포기와 무른 냄새가 없는지 살피고, 둘째, 포기 서너 개를 골라 잎 뒷면을 뒤집어 알과 애벌레를 확인하고, 셋째, 이랑 골의 물빠짐 상태를 봅니다. 이 5분 순찰이 습관이 되면 어떤 문제든 초기에 잡히고, 초기에 잡히는 문제는 대부분 큰돈과 약 없이 해결됩니다.
■ 점검 결과별 다음 행동
02개였던 분은 현재 관리를 유지하되, 한랭사가 없다면 이번 주에 씌우는 것으로 예방을 마무리하시면 됩니다. 35개였던 분은 주말에 피해 잎 정리와 물길 트기, 벌레 순찰을 한 번에 하고 한랭사 설치까지 끝내는 것을 권합니다. 6개 이상이라면 무른 포기 제거부터 시작해 살충제 방제, 그리고 빈자리에 예비 모종을 보식하는 것까지 순서대로 진행해야 합니다. 9월 중순까지는 모종을 다시 심어도 김장에 늦지 않으니, 포기하기엔 이릅니다. 참고로 종묘상에서는 9월에도 예비 모종을 팔고, 배추 모종 글에서 다뤘듯 심을 때 두세 포기 여유분을 밭 귀퉁이에 심어두면 이런 순간에 요긴하게 쓰입니다. 약을 쓰기로 했다면 라벨의 대상 작물과 수확 전 사용 가능 일수를 반드시 확인하고, 같은 약을 연달아 쓰기보다 계통이 다른 약을 번갈아 쓰는 것이 내성을 막는 길입니다. 가을 텃밭 전체 일정은 텃밭 가을 정리 글에서 이어집니다.
우리 밭 점검 결과는 몇 개였는지, 벌레와 병 중 어느 쪽이 애를 먹이는지 댓글로 나눠주세요. 회원님들 각자의 방제 요령이 모이면 그것만큼 좋은 자료가 없습니다. 11월 김장독에 벌레 구멍 없는 배추가 들어가는 그날까지, 김장 농사 이야기는 여가상회에서 계속 이어가겠습니다.
태그: 배추무름병, 벼룩잎벌레, 김장배추, 배추벌레, 무병해충, 한랭사, 텃밭병해충, 가을텃밭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