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추 농사 석 달의 성패는 심는 날 하루, 그중에서도 밭에 서 있는 30분 안에 절반이 정해집니다. 같은 모종을 같은 밭에 심어도 어떤 배추는 사흘 만에 새 잎을 올리고, 어떤 배추는 일주일 내내 축 늘어져 몸살을 앓습니다. 차이는 품종도 거름도 아니고 심던 날의 요령인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중부 기준 배추 정식 적기는 8월 하순부터 9월 초순, 남부는 9월 초중순이니 이제 열흘 남짓 남았습니다. 품종 고르기부터 수확까지의 전체 일정은 앞서 올린 김장배추 모종 글에 달력째 정리돼 있으니, 오늘은 범위를 확 좁혀 '심는 날 하루'에 필요한 것만 담습니다. 모종 들고 밭에 서서 이 글 하나만 열어보면 되도록요.

【바쁜 분을 위한 요약 — 이 다섯 줄이 전부입니다】

하나, 맑은 날 오전이 아니라 흐린 날 오후에 심습니다. 둘, 포기 간격은 40cm, 자로 재듯 지킵니다. 셋, 깊이는 모종 흙높이 그대로, 더 깊지도 얕지도 않게. 넷, 심은 직후 물을 흠뻑, 잎이 아니라 뿌리 자리에 줍니다. 다섯, 물 준 그날 바로 한랭사를 씌웁니다. 내일이 아니라 오늘.

바쁘신 분은 여기까지만 챙기셔도 됩니다. 이제 한 줄씩, 왜 그런지와 실제 요령을 파고들어 보겠습니다.

【시작 전 5분 — 심는 날 밭에 들고 갈 것들】

모종은 심을 수량에 예비 두세 포기를 더한 숫자로 준비합니다. 잎 45장에 밑동이 단단하고 포트 밑구멍으로 흰 뿌리가 살짝 보이는 것이 좋은 모종이고, 잎이 예닐곱 장을 넘긴 웃자란 모종은 몸살이 길어 오히려 손해입니다. 도구는 모종삽, 물뿌리개나 호스, 간격을 잴 막대, 그리고 한랭사와 터널 지주까지 심는 날 한 번에 챙겨 갑니다. 한랭사를 "다음 주에 사서 씌우지" 하고 미루는 순간 위 요약의 다섯째 줄이 무너집니다. 밑거름은 12주 전에 미리 넣어 두둑까지 만들어 둔 상태여야 하며, 아직이라면 오늘은 거름부터 넣고 심는 날을 열흘 뒤로 미루는 것이 바른 순서입니다. 장갑과 앉을 깔개까지 챙기면 삼십 분 작업이 허리에 훨씬 덜 부담스럽습니다.

【딥다이브 ① 흐린 날 오후 — 심는 시간을 고르는 것도 기술입니다】

배추 모종은 뽑히고 옮겨지는 순간부터 뿌리로 물을 빨아올리는 힘이 뚝 떨어집니다. 그런데 잎에서는 계속 수분이 증발하니, 뙤약볕 아래 심으면 들어오는 물은 없는데 나가는 물만 많아 잎이 삶은 나물처럼 처지는 몸살이 옵니다. 그래서 정식 날짜는 일기예보를 보고 고르는 것이 좋습니다. 구름 낀 날이나 보슬비 오는 날이 최고이고, 맑은 날뿐이라면 해가 기우는 오후 4시 이후에 심어 밤사이 뿌리가 자리 잡을 시간을 벌어줍니다. 8월 말은 아직 한낮 기온이 30도를 넘나드는 때라 이 차이가 특히 큽니다. 하나 더, 모종은 심기 한두 시간 전에 포트째 물을 흠뻑 주어 흙이 촉촉한 상태로 뽑아야 뿌리 흙이 부서지지 않습니다. 마른 포트에서 뽑으면 흙이 우수수 떨어지며 잔뿌리가 함께 끊어지고, 그만큼 정착이 늦어집니다.

【딥다이브 ② 간격 40cm — 아깝다고 줄이면 결구가 안 됩니다】

김장배추는 다 자라면 잎이 사방 40cm 가까이 벌어지는 큰 채소입니다. 포기 사이 40cm, 줄 사이는 60cm 안팎이 표준인데, 초보 텃밭에서 가장 흔한 유혹이 "한 포기라도 더" 하는 마음으로 30cm, 25cm로 줄여 심는 것입니다. 결과는 정반대로 나옵니다. 잎이 서로 겹치면 햇빛과 바람을 나눠 갖느라 속이 차는 결구가 부실해지고, 통풍이 막혀 병도 잘 옵니다. 60포기 빽빽이 심어 반쪽짜리를 얻느니 40포기를 제 간격으로 심어 속 찬 배추를 얻는 쪽이 무게로도 이득입니다. 줄자가 없어도 방법은 있습니다. 어른 걸음 반 보가 대략 40cm이고, 모종삽 두 개를 이어 놓은 길이로 재도 비슷합니다. 심기 전에 두둑 위에 심을 자리를 먼저 콕콕 표시해두고 시작하면 간격이 흐트러지지 않고 모종 수량 계산도 한 번에 끝납니다.

【딥다이브 ③ 깊이는 모종 흙높이 그대로 — 깊으면 썩고 얕으면 마릅니다】

구덩이는 모종삽으로 포트보다 한 치수 크게 파고, 모종을 넣었을 때 포트에 담겨 있던 흙 표면이 밭 표면과 같은 높이가 되도록 맞춥니다. 이것이 정식 깊이의 전부입니다. 바람에 쓰러질까 봐 줄기 깊숙이 묻으면 잎이 나오는 생장점 부근에 흙이 닿아 물러지기 쉽고, 반대로 뿌리 흙덩이가 밭 위로 볼록 솟게 얕게 심으면 그 부분부터 말라 뿌리가 타들어 갑니다. 심고 나서 주변 흙을 손바닥으로 지그시 눌러 뿌리 흙과 밭 흙 사이의 빈 공간을 없애는 것도 잊지 마세요. 빈틈이 남으면 물을 줘도 뿌리에 닿지 않습니다. 다만 힘껏 다지면 흙이 떡져 뿌리가 숨을 못 쉬니, 악수하듯 지그시가 요령입니다. 밑거름은 정식 1~2주 전에 미리 넣어두는 것이 원칙이라, 심는 날 구덩이에 비료를 넣는 것은 뿌리를 태울 수 있어 권하지 않습니다.

【딥다이브 ④ 물 흠뻑 — 첫 물이 뿌리와 흙을 붙입니다】

심은 직후의 첫 물은 목마름을 달래는 물이 아니라 뿌리 흙과 밭 흙을 밀착시키는 접착제 역할입니다. 그래서 양이 중요합니다. 포기당 물뿌리개로 두세 바가지, 흙 속 20cm까지 젖도록 흠뻑 주어야 하고, 잎 위에 흩뿌리지 말고 포기 밑동 둘레의 흙에 대고 천천히 부어야 합니다. 한 번 주고 스며들면 한 번 더 주는 두 번 나눠주기가 확실합니다. 물이 스민 뒤 포기 둘레에 마른 풀이나 짚을 한 줌 덮어주면 증발이 줄어 다음 물 주기가 한결 여유로워집니다. 이후 사나흘은 겉흙이 마르면 아침이나 저녁 서늘한 때에 보충해주되, 매일 습관처럼 붓는 것은 금물입니다. 뿌리가 자리 잡기 전의 과습은 가뭄만큼 해로워서, 밑동이 무르는 병을 부르는 지름길이 됩니다.

【딥다이브 ⑤ 즉시 한랭사 — 벌레는 하루를 기다려주지 않습니다】

가을 배추의 최대 적인 벼룩잎벌레와 청벌레(배추흰나비 애벌레)는 심은 그날 밤부터 어린 모종에 달려듭니다. 구멍이 숭숭 난 뒤에 씌우는 한랭사는 벌레를 가두는 그물이 될 뿐이라, 물을 준 직후 바로 터널 지주를 꽂고 한랭사를 덮어 흙으로 자락을 꼼꼼히 눌러두는 것이 정답입니다. 망 자락이 들뜨면 나비가 그 틈으로 들어가 알을 낳으니 사방을 빈틈없이 막아야 하고, 망 눈은 1mm 안팎의 촘촘한 것이라야 벼룩잎벌레까지 막습니다. 한랭사는 벌레만 막는 것이 아니라 한낮 강한 볕을 한 겹 걸러주어 정식 몸살을 줄이는 차광 효과도 겸하니, 정식 직후 일주일의 보험으로 이만한 것이 없습니다. 김장 채소를 노리는 병해충의 종류별 대처는 앞서 올린 배추·무 병해충 글에 따로 정리돼 있으니 함께 보시면 좋습니다.

【정식 후 3일 — 아침저녁 1분 관찰 포인트】

첫째 날, 한낮에 잎이 살짝 처지는 것은 정상입니다. 저녁에 다시 서면 합격이고, 밤에도 처져 있으면 이튿날 아침 물을 보충합니다. 둘째 날, 잎 색을 봅니다. 가장자리가 하얗게 바래면 볕 몸살이니 한랭사 위에 차광망을 한 겹 더 얹어줍니다. 셋째 날, 새 잎을 확인합니다. 가운데에서 연둣빛 새 잎이 고개를 들면 뿌리가 자리를 잡았다는 신호라 그때부터는 물 주기를 줄여도 됩니다. 사흘이 지나도 새 잎 기미가 없고 포기 전체가 주저앉으면 뿌리가 상한 것이니, 미련 없이 예비 모종으로 바꿔 심는 편이 빠릅니다. 보식은 늦어도 9월 초순까지가 한계라, 모종을 살 때 심을 수량보다 두어 포기 여유 있게 사두는 것이 이럴 때 힘을 발휘합니다. 예비 모종은 밭 한구석에 포트째 두고 물만 챙겨주면 열흘은 거뜬합니다. 그리고 아침저녁 관찰하는 김에 한랭사 자락이 바람에 들뜨지 않았는지도 함께 확인하세요. 사흘의 1분 관찰이 석 달 농사의 보험입니다.

【실패 장면 셋 — 미리 보면 피할 수 있습니다】

장면 하나. 토요일 한낮 12시, 뙤약볕 아래에서 정식. 다음 날 잎이 전부 늘어져 일주일 내내 몸살을 앓습니다. 심는 날짜는 밭 사정이 아니라 하늘 사정에 맞추는 것이 먼저입니다. 장면 둘. 모종 쉰 포기가 아까워 30cm 간격으로 촘촘히. 10월에 잎만 무성하고 속은 빈 배추가 줄지어 섭니다. 심기 전 자리 표시 5분이 이 장면을 막습니다. 장면 셋. "한랭사는 다음 주말에 사서" 하고 맨몸으로 일주일. 벼룩잎벌레가 어린잎을 갉아 회복이 어려워집니다. 씌우는 날이 곧 심는 날이어야 합니다. 세 장면 모두 기술이 아니라 마음가짐에서 갈립니다. 서두르지 말 것, 아까워하지 말 것, 미루지 말 것. 이 세 가지면 심는 날의 함정은 거의 다 피한 셈입니다.

【심는 날 자주 나오는 질문 셋】

"비 오는 날 심어도 되나요?" 보슬비라면 오히려 최고의 정식 날입니다. 다만 장대비에는 흙이 다져지고 모종이 상하니 피하고, 큰비 갠 직후 흙이 질척일 때도 하루 말린 뒤 심는 것이 좋습니다. 태풍 예보가 있으면 며칠 늦추는 편이 낫습니다. 늦게 심은 모종은 따라잡아도 부러진 모종은 못 살립니다.

"포트에서 뺀 뿌리를 풀어줘야 하나요?" 배추는 뿌리를 건드릴수록 몸살이 커지는 작물입니다. 뿌리 흙덩이를 흐트러뜨리지 말고 통째로 그대로 심는 것이 정답입니다.

"몇 포기나 심어야 할까요?" 4인 가족 김장 기준 20~30포기면 넉넉합니다. 첫해라면 열 포기부터 시작해 손에 익히고, 남는 자리에는 무나 갓을 넣는 것도 좋은 선택입니다.

【정리하면】

① 흐린 날 오후에, 물 먹인 모종을 심는다 ② 간격 40cm는 결구를 위한 최소 약속 ③ 깊이는 포트 흙높이 그대로, 심고 지그시 눌러주기 ④ 첫 물은 밑동에 흠뻑 두 번, 이후 과습 주의 ⑤ 한랭사는 심은 그날 즉시, 자락은 흙으로 밀봉 ⑥ 사흘째 새 잎이 정착의 신호, 안 보이면 보식. 심는 날 30분의 정성이 11월 김장독의 배추 포기 수를 정합니다.

올가을 첫 정식하시는 회원님들, 심은 날 밭 사진을 원예·텃밭 게시판에 남겨주세요 🌱 한랭사와 터널 지주, 모종삽은 여가상회에서도 준비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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