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하고 나면 부부가 하루 스물네 시간을 한집에서 보내게 됩니다. 그런데 막상 마주 앉으면 할 말이 없어 각자 텔레비전과 휴대전화만 들여다보는 집이 많습니다. 남편은 남편대로 등산 모임, 아내는 아내대로 친구 모임, 취미마저 따로인 채로요. 요즘 5060 부부 사이에서 파크골프가 부부 공통 취미 1순위로 꼽히는 것은 이 풍경을 바꿔주기 때문입니다. 같은 채를 들고 같은 잔디밭을 네 시간 나란히 걷는 운동, 오늘은 부부가 파크골프를 함께 시작하는 순서와 요령, 그리고 같이 쳐도 싸우지 않는 비결까지 정리했습니다.

■ 왜 유독 부부에게 맞는 운동인가요

첫째, 실력 차이가 크지 않습니다. 힘으로 밀어붙이는 운동이라면 대개 남편이 앞서가고 아내는 재미를 잃기 쉬운데, 파크골프는 힘보다 감각과 꾸준함의 운동이라 출발선이 비슷합니다. 오히려 힘을 빼야 잘 맞는 운동 특성상 아내가 남편을 앞지르는 집이 적지 않고, 구장에서는 "집사람한테 한 수 배운다"는 남편들의 웃음 섞인 하소연이 흔하게 들립니다. 승부가 되니 재미도 두 배입니다.

둘째, 대화 시간이 생깁니다. 18홀을 돌면 한두 시간을 나란히 걷게 되는데, 마주 보고 앉으면 안 나오던 이야기가 걸으면서는 술술 나옵니다. 홀마다 잘 쳤네 아깝네 주고받는 말까지 합치면, 라운드 한 번이 부부 대화 일주일치라는 말이 과장이 아닙니다.

셋째, 비용 부담이 적습니다. 골프였다면 부부 동반 라운드 한 번에 수십만 원이 들지만, 파크골프는 채와 공을 갖추고 나면 이용료가 무료이거나 몇천 원 수준인 공영 구장이 많습니다. 부부가 평생 함께할 취미의 유지비로 이만한 운동이 없습니다. 넷째, 체력 부담이 적어 어느 한쪽이 지쳐 떨어질 일이 없다는 것도 부부 운동으로 큰 장점입니다.

■ 같이 시작하는 순서

한쪽이 먼저 배우고 배우자를 데려오는 경우가 많은데, 권해드리는 그림은 처음부터 같이 배우는 것입니다. 한쪽이 선생 노릇을 하면 꼭 탈이 나거든요. 순서는 혼자 시작할 때와 같습니다. 가까운 구장을 찾고, 지역 협회나 구장의 초보 강습이 있으면 부부가 나란히 등록하고, 없으면 대여채로 몇 번 쳐보며 감을 잡는 것입니다. 자세한 준비물과 절차는 예전 입문 글에 정리해 두었으니 참고하시고, 여기서는 부부라서 다른 점만 짚습니다. 강습에서 부부는 같은 조가 되기보다 떨어져 배우는 편이 낫습니다. 옆에 있으면 서로 자세를 고쳐주고 싶어 입이 근질근질해지는데, 그 입이 바로 갈등의 씨앗입니다. 배움은 강사에게 맡기고 부부는 재미만 나누세요. 첫 라운드는 한산한 평일 오전 시간대를 권합니다. 뒤 팀 눈치 없이 천천히 돌 수 있어 마음이 편하고, 그 시간대 구장에는 부부 팀이 많아 눈으로 배우는 것도 많습니다. 처음 한두 달은 스코어를 아예 세지 않고 도는 것도 방법입니다. 숫자가 붙는 순간 경쟁이 되는데, 부부 라운드의 초반 목표는 실력이 아니라 '같이 다니는 재미 붙이기'이기 때문입니다.

■ 채는 각자 마련하세요

비용을 아끼려고 채 하나를 번갈아 쓰는 부부가 계신데, 두 가지 이유로 말리고 싶습니다. 우선 규칙 문제입니다. 파크골프에서 채는 개인 장비라 정식 라운드에서는 한 사람이 하나씩 갖추는 것이 원칙이고, 대회에서는 당연히 각자의 채가 있어야 합니다. 다음은 몸의 문제입니다. 채는 키와 체형, 힘에 맞춰 길이와 무게를 고르는 물건이라 부부라도 맞는 채가 다릅니다. 남편 채가 아내에게는 길고 무거워 스윙이 망가지기 쉽습니다. 첫 채는 10만 원대로도 충분히 시작할 수 있고 고르는 기준은 예전 채 고르기 글에 정리해 두었으니, 그 기준으로 각자 몸에 맞는 채를 하나씩 마련하시길 권합니다. 부부가 함께 매장에 가서 서로 골라주는 재미도 쏠쏠하고, 결혼기념일 선물로 채를 주고받는 분들도 계십니다.

■ 부부 대회와 동반 문화

파크골프 대회에는 부부동반 부문을 두는 대회가 있습니다. 지역 협회나 클럽이 여는 대회에서 부부가 한 팀으로 성적을 합산하는 방식이 흔한데, 잘 치는 것 못지않게 둘이 고르게 치는 것이 중요해 부부 팀워크가 그대로 성적이 됩니다. 시상대에 부부가 나란히 오르는 장면은 어느 대회에서든 박수가 가장 큰 순간입니다. 부부 대회를 목표로 잡으면 평소 라운드의 밀도도 달라집니다. 같은 편이 되는 순간 배우자의 버디가 내 버디가 되니, 훈수 대신 응원이 나오는 신기한 효과도 있습니다. 대회 준비와 출전 절차가 궁금하시면 예전 대회 도전 글을 참고하세요. 동호회에서도 부부 회원은 환영받습니다. 월례회나 단체 나들이에서 부부 동반은 모임 분위기를 한결 부드럽게 만들어주기 때문입니다. 동호회 가입 요령은 앞서 올린 동호회 글을 참고하세요. 클럽에 부부가 함께 적을 두면 주말 약속이 저절로 생기고, 비슷한 또래 부부들과의 왕래로 이어지는 것도 덤입니다.

■ 부부의 일주일 루틴, 이렇게 잡아보세요

취미가 오래가려면 요일에 박아두는 것이 최고입니다. 많은 부부들이 쓰는 틀은 '라운드 주 2회+집 연습'입니다. 예를 들어 화요일과 금요일 오전을 부부 라운드 날로 고정하고, 요즘 같은 한여름에는 해 뜨자마자 나가 아침 아홉 시 전에 마치는 식으로 계절에 맞춰 시간만 옮깁니다. 라운드 없는 날 저녁에는 거실에서 퍼팅 내기 열 번, 이것이 은근히 부부 오락이 됩니다. 한 달에 한 번은 옆 동네 구장으로 원정을 가보세요. 새 구장은 두 사람 모두에게 초행이라 실력 차이가 잠시 사라지고, 라운드 뒤 그 동네 맛집까지 들르면 반나절 나들이가 됩니다. 이 재미가 커지면 채 싣고 떠나는 1박 2일 파크골프 여행으로 이어지는데, 그 이야기는 따로 한 편으로 정리하겠습니다.

■ 싸우지 않는 라운드 5계명

부부 파크골프의 유일한 부작용은 잔디밭에서 시작된 말다툼이 저녁상까지 이어지는 것입니다. 오래 함께 치는 부부들이 지키는 수칙은 대체로 비슷합니다.

하나, 훈수 금지. 배우자의 스윙이 아무리 답답해도 먼저 묻기 전에는 입을 닫습니다. 같은 말도 강사가 하면 조언이고 배우자가 하면 잔소리가 됩니다. 둘, 한숨·혀 차기 금지. 말보다 아픈 것이 소리입니다. 배우자의 공이 OB가 나면 못 본 척이 예의입니다. 셋, 스코어로 놀리지 않기. 이긴 날은 담담하게, 진 날은 깨끗하게. "오늘 저녁은 진 사람이 차리기" 정도의 가벼운 내기는 양념이 됩니다. 넷, 잘 친 공은 크게 축하하기. 다섯 계명 중 제일 중요합니다. 부부는 서로의 유일한 전속 갤러리라는 마음이면 됩니다. 다섯, 라운드의 승부는 구장에 두고 오기. 현관문을 넘는 순간 오늘의 버디만 기억하고 OB는 잊는 것입니다. 다 지키기 어렵다면 하나만 기억하세요. 훈수만 참아도 부부 라운드의 평화는 절반 이상 지켜집니다 ㅎㅎ

■ 부부가 함께 걷는 것 자체가 보약입니다

파크골프 18홀이면 잔디 위를 몇천 보 걷게 되고, 하루 두 바퀴를 돌면 만 보 걷기가 저절로 채워집니다. 그냥 걷기와 달리 잔디의 푹신한 바닥이라 무릎 부담이 적고, 걷기에 스윙이 더해지니 하체와 허리, 어깨까지 고루 쓰는 전신 운동이 됩니다. 야외 햇볕은 뼈 건강에 필요한 비타민D까지 챙겨줍니다. 부부가 함께하면 여기에 두 가지가 더해집니다. 하나는 꾸준함입니다. 혼자면 건너뛸 날도 배우자가 채를 챙기면 따라나서게 되니, 운동을 습관으로 만드는 데 배우자만 한 관리자가 없습니다. 다른 하나는 마음 건강입니다. 대화하며 걷는 운동은 몸과 머리를 함께 쓰는 일이라 나이 들수록 값어치가 커지고, 무엇보다 부부가 같은 취미로 웃을 일이 매주 생긴다는 것 자체가 은퇴 생활의 보약입니다. 실제로 구장에서 만나는 장수 부부들의 공통점으로 파크골프를 꼽는 이야기가 심심찮게 들리는 것도 이 때문일 겁니다.

■ 자주 묻는 질문

"남편(아내)이 영 시큰둥합니다." 말로 권하기보다 구장 구경을 한번 시켜주세요. 또래 부부들이 웃으며 도는 모습을 보면 마음이 반은 넘어옵니다. 그래도 싫다면 억지로 끌지 않는 것이 맞습니다. 취미는 권유까지만, 결정은 본인 몫입니다.

"실력 차이가 벌어지면 재미없지 않을까요?" 잘 치는 쪽이 몇 타 접어주는 핸디를 쓰면 됩니다. 핸디를 정해 두면 실력 차이가 나도 매 홀이 승부가 되고, 못 치는 쪽이 이기는 날도 생겨 오히려 재미가 오래갑니다.

"둘이 시작하려니 장비값이 두 배라 부담됩니다." 처음부터 다 갖출 필요는 없습니다. 강습이나 초반 몇 번은 구장 대여채로 쳐보고, 계속할 확신이 선 다음에 채를 마련해도 늦지 않습니다. 첫 채는 한 사람당 10만 원대면 충분하고, 한 명분 골프 입문 비용으로 부부 두 사람이 시작하고도 남는 것이 파크골프입니다.

"운동 신경이 서로 너무 다릅니다." 처음 몇 달의 속도 차이는 반년이면 대부분 좁혀집니다. 파크골프는 순발력보다 반복의 운동이라, 늦게 붙은 감각이 오히려 오래가는 경우도 많습니다. 빨리 느는 쪽이 할 일은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기다려주는 것, 이것 하나면 됩니다.

■ 정리하면

실력 차이 적고, 대화가 생기고, 비용 부담 없는 운동이라 파크골프는 부부 공통 취미로 더할 나위가 없습니다. 시작은 부부가 나란히 강습부터, 채는 각자 몸에 맞게 하나씩, 라운드에서는 훈수 대신 박수를. 이 세 가지만 지키면 됩니다. 여든까지 함께할 취미를 찾고 계셨다면, 이번 주말 두 분이 손잡고 가까운 구장에 다녀와 보세요. 부부가 함께 치시는 회원님들의 이야기도 궁금합니다. 같이 시작한 계기나 우리 집 라운드 규칙이 있다면 댓글로 나눠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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